'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매어서 안 가고는 못합니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그 마음이라는 말은 주님이 계신다는, 주님이 계신다는 걸, 자꾸 자기 마음이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소원하시고 주님이 거기 가라 하시니, 이 주님을 괄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마음에 '내 눈에 주님이 보이니' 그 말입니다. 내 눈에 예루살렘에 가라고 하시는 주님이 내 곁에 보이고 있으니 이분을 배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거는 내 눈이 뜨여서 주님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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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이러니까 영의 권위는 마음의 기능을 점령한 거기에서 권위가 크고 작다 이렇게 할 수가 있고, 또 마음의 권위는 제 몸을 얼마나 점령했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권위가 크고 작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그 몸을 백 분의 일쯤 점령해 가지고서 명령하면 백분지 일은 순종하지마는 백의 구십 구는 순종 안 하는 몸이 있고 어떤 사람의 마음은 그 마음이 그 흠을 명령하면 그 몸이 죽는 데 이르러도 꼼짝 못 하고 그 마음이 말하는 대로 꼬박 꼬박 순종하는 그것은 그 마음이 몸을 다 점령한 것입니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옆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지금 죽일라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지 말라고 모두 아시아에서 울면서 이렇게 할 때에 말을 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마음에 붙들린 바 되어서. 마음에 매인 바 되어서 죽어도 나는 예루살렘에 안 갈 수가 없다 하는 그 말은 고기 덩어리를 말합니다. 고기 덩어리가 예루살렘에 가 죽어도 마음이 가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마음에 따라서 고기 덩어리 내 몸은 죽어도 안 갈 수가 없다 거기에서 보면 사도 바울도 그 마음이 몸을 얼마나 점령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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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그래서, 양심이 강건하고 장성하게 되면 장성한 양심은 어떤 양심이 장성한 양심이며 강건한 양심은 어떤 양심이 강건한 양심인가 자기의 소유를 자유 자재 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지는 양심이 장성한 양심입니다. 자기의 소유물, 무슨 돈이든지 물질이든지 회사든지 무엇이든지 자기의 소유를 자기 욕심이 주장하지 안하고 자기 가족이 주장하지를 못하고 다만 자기 양심이 그 소유를 주권했을 때에 그 양심은 매우 강건한 양심입니다. 강하고 장성한 양심입니다.
그 다음으로 장성한 양심은 자기의 몸을 주권하는 양심입니다. 자기 몸이 아무리 곤란스러워도 아무리 불리스러워도 자기 몸이 감옥에 갇혀도 자기 몸이 어떤 곤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그래도 그 양심이 주권해서 그 몸이 주권하지 못하고 양심이 주권하는 그 양심이 강건하고 장성한 양심인 것입니다.
최고로는 그 양심이 자기의 마음을 주권하는 그 양심이 강하고 장성한 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아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갈라고 할 때에 모든 그 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이 목을 안고 울면서 가지 말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제일 어려운 문제가 '나는 마음에 양심에게 매인 바 되어서 양심이 나를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니 내가 그 양심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다' 해 가지고 '나는 마음에 매인바 되어서 예루살렘에 가서 죽어도 가지 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주권하는 그 양심이 장성한 양심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 남은 것은 생명을 주권하는 양심이면 그 양심은 장성한 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대 시대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물론 다 생의 애착심은 다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애착심은 있지만 물론 죽고 난 다음에 하늘나라의 구원도 영광도 있으니까 그것도 좋지만 다 그래도 남아 있으면서 좀 구원 이루는 일을 하고 갈려고 하는 것이 다 사람들의 생의 애착심인 것입니다.
생의 애착심까지 양심이 주권하고 있으면 그 양심은 장성한 양심입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생사나 자기의 모든 움직임이나 그런 모든 것이 다 양심에게 매여 가지고 자유 하지 못 한다고 말했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장성한 양심을 만들도록 우리가 애를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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