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사람은 후패하나'
신앙이라 하는 것은 겉사람은 자꾸 노쇠해도 속사람은 노쇠하지 않고 날로 새로와지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사람의 구원은 세상 떠날 그때가 그 사람으로서는 최고로 강하고 윤기 있고 또 열심 있고 간절한 때입니다. 육신이 따라가지 않아서 그렇지.
(89070860)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속사람은 뭐인데요? 속사람은 둘째 아담의 자손이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89051141)
후패하나'
여기 후패라 말은 썩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낡아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겉으머리 육신의 사람은 일 년 이 년 자꾸 지나가면 노쇠해서 점점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질 수 있습니다. 요사이 지금 좀 기도를 더 힘을 쓰고 기도하러 많이 가는데 가는 것은 좋은데 가 가지고 유익을 못 보면 모처럼 가 가지고 손해입니다. 이래서 꼭 갈 때는 내가 오늘은 가 가지고 좀 새로와져 가지고 오겠다 해서 꼭 새것을 갈아 입고 오는 그런 우리 자신들이 되도록 자꾸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89021751)
'그러므로'
'그러므로' 한 말씀은 위에 4장 전체에 말씀한 것을 두고서 이렇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 어떤 말이 있는고 하니 모든 것이 안팎이 있고 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점점 천한 것이 귀한 것으로 개조돼 나가는 이런 일들이 있다, 우리의 죽을 자의 생활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와서 살면, 죽은 자로 사는 그 생활 이면에 산 자로 살게 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마찰이 있다 그런 것을 여기 말씀해 놨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서 '그러므로' 말한 것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다음에 이유를 말하면서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낙심 안 한다'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낙심하지 아니할 그 아니하는 이유를 그 다음에 말씀을 합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그 이유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겉사람은 후패한다, 후패한다는 이 후패라 말이 좀 우리 나라 말로서는 모호합니다. 후패하는 말이 꼭 부패라는 말과 같이 들려집니다. 부패라는 말이 아닙니다. 후패라는 말은 그 바른 말은 이그러지고 찌끄러지고, 이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못쓰게 된다 그말이라.
'겉사람은 후패하나'
그러면 겉사람이 뭐인가? 겉사람은 이 심신, 마음과 고기덩어리 그것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이렇게 여게 표시를 해 놨습니다. 옛사람과는 다릅니다. 요걸 잘 구별해. 옛사람은 어떤 게 옛사람인가?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 그 심신을 주관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겉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눈에 보이는 이 껍데기 심신의 사람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는 겉사람이라 속사람이라 이렇게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겉사람은 무엇을 가리킨 말인고 하니 심신 이것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읍니다. 겉사람은 후패한다, 그러면 이 심신은 날마다 썩어져 갑니다.
우리가 십자가 생활에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뭐인고 하니 첫째는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후패라 말은 부패와 다릅니다. 후패라는 것은 깨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겉사람은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육은 세월이 가면 자꾸 노쇠해지고 쇠퇴해집니다. 이래서,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쇠퇴해지고 노쇠해지고 이것은 다 뿌숴져서 차차 차차 못쓰게 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면 겉사람이 이렇게 뿌숴지고 없어지는 동시에 그 속에 속사람이 점점 성장되고 또 온전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은 심신의 형체와 그 정력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이 후패해진다, 사람의 심신으로 된 그 형체는 그 정력이 차차 차차 감퇴되어진다 없어진다 그말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이 심신으로 된 이 정력의 사람은 차차 차차 늙어서 쇠해져서 못쓰게 되나 하는 그말입니다. 후패라 하는 그 말은 썩는다는 말이 아니고 노후의 뜻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일본말로는 야부레라 하는데 인제 여게서는 우리 나라 말로는 그저 후패라고 이래 썼으나 썩는 것이 아니고 차차 노쇠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심신의 정력은 그 날 돈벌이를 했든지 싸움을 했든지 죄를 지어서 행락을 취했든지 어쨌든지 하루 지내면 그 날에 해당되는 정력은 썩어져 버립니다. 그 날 정력은 없어집니다.자기가 호별 방문의 전도를 해도 그 정력은 없어졌소. 또 설교를 하면서 정력을 써서 설교해도 그 정력은 없어졌습니다. 정력이 없어졌는데 그 정력이 없어질 정력인데 없어질 정력이 없어질 기능이 되기도 하고, 없어질 정력이 없어질 기능이 아니고 영원히 있을 그 기능으로서 변화되기도 합니다.
테니스라고 정구 치는 이것도 한 시간 치고 나면 그만큼 정력이 소모됐습니다. 없어졌습니다. 소모됐습니다. 그러기에 그때 후패해진다 말이요, 자꾸 썩어졌다 소모됐다 말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해지고 속사람은 새로와진다 하면은 이 정력을 테니스 치는 걸 자꾸 이래 하니까 테니스 치는 그 정력이 변해서 기능이 됐습니다. 무슨 기능이 됐느냐? 공을 던지고 받고 하는 이 기능이 됐습니다. 그 기능이 됐으니까 이 기능이 됐지마는 그 기능은 썩는 기능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육체를 위해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썩어질 기능을 마련하다 말이오.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새로와진다' 말은 없는 존재가 새로 생겨진다는 말이 아니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때묻은 것이 때가 없어진다, 깨끗해진다, 그것이 또 완전하게 된다, 객관성 있는 것이 주관성으로 자꾸 이래 변화된다. 또 법적으로 된 것이, 객관 법적으로 된 것이 내 주관의 지식으로 이와 같이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속사람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우리의 심신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진리와 성령과 영생으로 우리는 살아난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과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날로 새로와진다 하는 그 말은 진리의 기능으로, 성령의 기능으로, 또 사죄의 기능으로, 칭의의 기능으로, 하나님과 화친의 기능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점점 변화돼 간다 말입니다. <
그 기능을 가지고서 썩지 안할 영원한 기능을 만드는 거는 뭐이냐 하면 그 정력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진리를 줬습니다. 진리대로 사는 요 정력 가지고 살면은 진리대로 사는 그 기능이, 진리대로 행하는 기능이 됐습니다. 진리대로 실행하는 기능, 또 영감대로 실행하는 기능,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죄를 이기는 기능, 또 의를 행하는 기능,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기능 이걸 자꾸 연습했다 말이오. 없어지는 정력 가지고서 이것을 연습하니까 이제 썩어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해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날로 새로워진다.
우리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진리와 영감과 사죄, 칭의, 화친, 중생, 그러고 영생. 이것으로써 우리가 종자를 얻었습니다. 종자를 얻은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해요. 종자를 얻었어. 그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났다 했습니다. 종자를 얻었는데 우리가 이 종자를 가지고서 한 시간 살면 그만큼 자랍니다. 두 시간 살면 그만큼 자라요.
그러면 우리 썩어지고 없어질 이 정력을 가지고서 이 새사람의 생활을 하게 되면 진리대로 행하는 진리 기능이 늙을 수가 있겠습니까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늙지도 죽지도 안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종자를, 씨를 받았는데 이 씨가 이미 심어져 가지고서 예수 믿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은 움이 나왔다 말이오. 움이 텄다 말이오.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처음에는 그 사람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백 점 만점에 한 점짜리 하다가 한 점짜리 그거는 없어지고 한 점짜리가 두 점짜리가 됐고 그다음에 팔십 점짜리 되고 구십 점짜리 되고 백 점짜리 되고 자꾸 점점 온전함을 향하여 가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 진리대로 행하는 게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그게 점점 자라서 온전해지고 온전해지고 자꾸 온전해진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89010100/0101)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심신 기능이라 하는 것은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심신의 기능이 없어지는데 없어지기를 죽어 없어지는 자 있고 살아났음으로 없어지는 거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는 다 옮겨집니다. 어떤 그릇에 열 개가 담겨 있는데 믿음을 지키지 안함으로써 열 개 중에 한 개가 죽음으로 그 그릇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음 한 시간을 믿음으로 살면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면서 죽음 그릇에서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옮겨진 것, 옮겨진 그것이 우리 눈에 육안에 보여지는가? 옮기려고 하는 거는 보여지는데 완전히 옮긴 것은 안 보여집니다. 옮긴 것은 없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본래 있던 이 사망의 그릇 속에는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 하루 산 것 만큼 그이가 가진 사람의 정력이나 모든 진액이나 그런 아름다움의 미는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늙어졌다 합니다. 없어졌는데 죽어 없어진 것 있고 살아 없어진 것 있고 이렇게 두 종류로 없어집니다.
없어지기는 없어졌는데 만일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았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그 몸에서 없어졌으나 영생할 것으로서 생명으로 옮겨서 없어졌으니까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이랬습니다.
반대로 그 한 시간을 사는 데 악령, 악성, 악습 곧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과 또 악습 그런 모든 버릇과 악령 이 세가지는 한 시간 믿음으로 산 것 만큼 없어졌고 또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한 시간 산 것 만큼 그것은 없어졌는데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심신의 기능과 심신의 미와 젊음과 그런 것이 없어졌는데, 커진 것은 죽은 것이 점점 커졌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것이 지금 커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요?
믿음을 지킴으로 그 사람이 젊음도 없어졌고 아름다움도 없어졌고 또 정력도 없어졌고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없어져 가지고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자기의 본체에서, 심신의 육이라는 본체에서 없어졌고 크기는 살아난 것이 컸습니다. 영생하는 것이 점점 커집니다. 이래서 ‘자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됩니다. 이러니까, 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영멸하는 기능으로, 또 영생하는 이 힘으로 영멸하는 영멸의 힘으로, 영생하는 아름다움으로 영멸의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커집니다.
* 요5:24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엡4:13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88060130)
'겉사람은 후패하나'
신앙이라 하는 것은 겉사람은 자꾸 노쇠해도 속사람은 노쇠하지 않고 날로 새로와지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사람의 구원은 세상 떠날 그때가 그 사람으로서는 최고로 강하고 윤기 있고 또 열심 있고 간절한 때입니다. 육신이 따라가지 않아서 그렇지.
(89070860)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속사람은 뭐인데요? 속사람은 둘째 아담의 자손이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89051141)
'후패하나'
여기 후패라 말은 썩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낡아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겉으머리 육신의 사람은 일 년 이 년 자꾸 지나가면 노쇠해서 점점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질 수 있습니다. 요사이 지금 좀 기도를 더 힘을 쓰고 기도하러 많이 가는데 가는 것은 좋은데 가 가지고 유익을 못 보면 모처럼 가 가지고 손해입니다. 이래서 꼭 갈 때는 내가 오늘은 가 가지고 좀 새로와져 가지고 오겠다 해서 꼭 새것을 갈아 입고 오는 그런 우리 자신들이 되도록 자꾸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89021751)
'그러므로'
'그러므로' 한 말씀은 위에 4장 전체에 말씀한 것을 두고서 이렇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 어떤 말이 있는고 하니 모든 것이 안팎이 있고 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점점 천한 것이 귀한 것으로 개조돼 나가는 이런 일들이 있다, 우리의 죽을 자의 생활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와서 살면, 죽은 자로 사는 그 생활 이면에 산 자로 살게 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마찰이 있다 그런 것을 여기 말씀해 놨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서 '그러므로' 말한 것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다음에 이유를 말하면서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낙심 안 한다'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낙심하지 아니할 그 아니하는 이유를 그 다음에 말씀을 합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그 이유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겉사람은 후패한다, 후패한다는 이 후패라 말이 좀 우리 나라 말로서는 모호합니다. 후패하는 말이 꼭 부패라는 말과 같이 들려집니다. 부패라는 말이 아닙니다. 후패라는 말은 그 바른 말은 이그러지고 찌끄러지고, 이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못쓰게 된다 그말이라.
'겉사람은 후패하나'
그러면 겉사람이 뭐인가? 겉사람은 이 심신, 마음과 고기덩어리 그것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이렇게 여게 표시를 해 놨습니다. 옛사람과는 다릅니다. 요걸 잘 구별해. 옛사람은 어떤 게 옛사람인가?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 그 심신을 주관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겉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눈에 보이는 이 껍데기 심신의 사람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는 겉사람이라 속사람이라 이렇게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겉사람은 무엇을 가리킨 말인고 하니 심신 이것을 가리켜서 겉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읍니다. 겉사람은 후패한다, 그러면 이 심신은 날마다 썩어져 갑니다.
우리가 십자가 생활에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뭐인고 하니 첫째는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후패라 말은 부패와 다릅니다. 후패라는 것은 깨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겉사람은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육은 세월이 가면 자꾸 노쇠해지고 쇠퇴해집니다. 이래서,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쇠퇴해지고 노쇠해지고 이것은 다 뿌숴져서 차차 차차 못쓰게 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면 겉사람이 이렇게 뿌숴지고 없어지는 동시에 그 속에 속사람이 점점 성장되고 또 온전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은 심신의 형체와 그 정력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이 후패해진다, 사람의 심신으로 된 그 형체는 그 정력이 차차 차차 감퇴되어진다 없어진다 그말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이 심신으로 된 이 정력의 사람은 차차 차차 늙어서 쇠해져서 못쓰게 되나 하는 그말입니다. 후패라 하는 그 말은 썩는다는 말이 아니고 노후의 뜻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일본말로는 야부레라 하는데 인제 여게서는 우리 나라 말로는 그저 후패라고 이래 썼으나 썩는 것이 아니고 차차 노쇠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심신의 정력은 그 날 돈벌이를 했든지 싸움을 했든지 죄를 지어서 행락을 취했든지 어쨌든지 하루 지내면 그 날에 해당되는 정력은 썩어져 버립니다. 그 날 정력은 없어집니다.자기가 호별 방문의 전도를 해도 그 정력은 없어졌소. 또 설교를 하면서 정력을 써서 설교해도 그 정력은 없어졌습니다. 정력이 없어졌는데 그 정력이 없어질 정력인데 없어질 정력이 없어질 기능이 되기도 하고, 없어질 정력이 없어질 기능이 아니고 영원히 있을 그 기능으로서 변화되기도 합니다.
테니스라고 정구 치는 이것도 한 시간 치고 나면 그만큼 정력이 소모됐습니다. 없어졌습니다. 소모됐습니다. 그러기에 그때 후패해진다 말이요, 자꾸 썩어졌다 소모됐다 말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해지고 속사람은 새로와진다 하면은 이 정력을 테니스 치는 걸 자꾸 이래 하니까 테니스 치는 그 정력이 변해서 기능이 됐습니다. 무슨 기능이 됐느냐? 공을 던지고 받고 하는 이 기능이 됐습니다. 그 기능이 됐으니까 이 기능이 됐지마는 그 기능은 썩는 기능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육체를 위해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썩어질 기능을 마련하다 말이오.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새로와진다' 말은 없는 존재가 새로 생겨진다는 말이 아니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때묻은 것이 때가 없어진다, 깨끗해진다, 그것이 또 완전하게 된다, 객관성 있는 것이 주관성으로 자꾸 이래 변화된다. 또 법적으로 된 것이, 객관 법적으로 된 것이 내 주관의 지식으로 이와 같이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속사람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우리의 심신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진리와 성령과 영생으로 우리는 살아난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과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날로 새로와진다 하는 그 말은 진리의 기능으로, 성령의 기능으로, 또 사죄의 기능으로, 칭의의 기능으로, 하나님과 화친의 기능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점점 변화돼 간다 말입니다. <
그 기능을 가지고서 썩지 안할 영원한 기능을 만드는 거는 뭐이냐 하면 그 정력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진리를 줬습니다. 진리대로 사는 요 정력 가지고 살면은 진리대로 사는 그 기능이, 진리대로 행하는 기능이 됐습니다. 진리대로 실행하는 기능, 또 영감대로 실행하는 기능,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죄를 이기는 기능, 또 의를 행하는 기능,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기능 이걸 자꾸 연습했다 말이오. 없어지는 정력 가지고서 이것을 연습하니까 이제 썩어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해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날로 새로워진다.
우리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진리와 영감과 사죄, 칭의, 화친, 중생, 그러고 영생. 이것으로써 우리가 종자를 얻었습니다. 종자를 얻은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해요. 종자를 얻었어. 그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났다 했습니다. 종자를 얻었는데 우리가 이 종자를 가지고서 한 시간 살면 그만큼 자랍니다. 두 시간 살면 그만큼 자라요.
그러면 우리 썩어지고 없어질 이 정력을 가지고서 이 새사람의 생활을 하게 되면 진리대로 행하는 진리 기능이 늙을 수가 있겠습니까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늙지도 죽지도 안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종자를, 씨를 받았는데 이 씨가 이미 심어져 가지고서 예수 믿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은 움이 나왔다 말이오. 움이 텄다 말이오.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처음에는 그 사람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백 점 만점에 한 점짜리 하다가 한 점짜리 그거는 없어지고 한 점짜리가 두 점짜리가 됐고 그다음에 팔십 점짜리 되고 구십 점짜리 되고 백 점짜리 되고 자꾸 점점 온전함을 향하여 가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 진리대로 행하는 게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그게 점점 자라서 온전해지고 온전해지고 자꾸 온전해진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89010100/0101)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심신 기능이라 하는 것은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심신의 기능이 없어지는데 없어지기를 죽어 없어지는 자 있고 살아났음으로 없어지는 거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는 다 옮겨집니다. 어떤 그릇에 열 개가 담겨 있는데 믿음을 지키지 안함으로써 열 개 중에 한 개가 죽음으로 그 그릇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음 한 시간을 믿음으로 살면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면서 죽음 그릇에서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옮겨진 것, 옮겨진 그것이 우리 눈에 육안에 보여지는가? 옮기려고 하는 거는 보여지는데 완전히 옮긴 것은 안 보여집니다. 옮긴 것은 없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본래 있던 이 사망의 그릇 속에는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 하루 산 것 만큼 그이가 가진 사람의 정력이나 모든 진액이나 그런 아름다움의 미는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늙어졌다 합니다. 없어졌는데 죽어 없어진 것 있고 살아 없어진 것 있고 이렇게 두 종류로 없어집니다.
없어지기는 없어졌는데 만일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았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그 몸에서 없어졌으나 영생할 것으로서 생명으로 옮겨서 없어졌으니까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이랬습니다.
반대로 그 한 시간을 사는 데 악령, 악성, 악습 곧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과 또 악습 그런 모든 버릇과 악령 이 세가지는 한 시간 믿음으로 산 것 만큼 없어졌고 또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한 시간 산 것 만큼 그것은 없어졌는데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심신의 기능과 심신의 미와 젊음과 그런 것이 없어졌는데, 커진 것은 죽은 것이 점점 커졌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것이 지금 커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요?
믿음을 지킴으로 그 사람이 젊음도 없어졌고 아름다움도 없어졌고 또 정력도 없어졌고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없어져 가지고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자기의 본체에서, 심신의 육이라는 본체에서 없어졌고 크기는 살아난 것이 컸습니다. 영생하는 것이 점점 커집니다. 이래서 ‘자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됩니다. 이러니까, 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영멸하는 기능으로, 또 영생하는 이 힘으로 영멸하는 영멸의 힘으로, 영생하는 아름다움으로 영멸의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커집니다.
* 요5:24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엡4:13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88060130)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우리의 육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첫째 아담에게 받은 사람은 하루 살면 그만큼 늙고 또 일 년 살면 그만큼 늙습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그러나 속은 날로 새로워진다 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받은 그 사람은 점점 깨끗해지고 점점 온전해져 가고 있습니다.
(86121950)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겉사람은 늙어지지마는 속은 날마다 젊어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도 점점 젊어져가고 사람을 향한 조심도 점점 젊어져가야 합니다.
(81112750)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저거가 능력 있는 줄로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람이 잘못 살아 그렇지 잘 살아서이 육체는 쇠해집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하는 그 속 사람의 그 부분은 마음에서부터 말하는 부분입니다. 바로 살아서, 그 마음이 이제 영의 모형을 잘 나타내서 영과 연결이 잘 돼 가지고서 영의 것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정말로 영의 도구가 잘 되어 있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그 마음은 차차 차차 길러 가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져 갈수록 자꾸 자라가게 됩니다. 많아져 갈수록 그 마음이, 마음의 기능이 자라져 가고 마음의 그 권세의 범위가 넓어져가고 자꾸 커져가고 이라기 때문에,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는 언젠가 제일 실력있는 때냐 하면 믿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이 그 사람의 그 마음은 제일 권세있는 때요 또 육도 권세있는 때입니다. 영도 권세있는 때입니다. 불신자는 자꾸 이것이 심신뿐이요 위에 생명에게 연결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돼 있지 안하고 그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심신으로만 움직이니까 그 마음이 얻을 때가 없어. 마음이 얻을 원천이 없어. 마음의 보급선이 없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육과 같이 쇠해집니다
(84031760) 3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로라'(요6:48),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을 말합니다. 연결이 생명입니다. 사망은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사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죽은 것이 우리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다 죽었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영도 죽어 있고, 마음도 죽어 있고, 몸도 죽어 있고, 다 죽어 있는데, 이 죽어 있는 것이 사는 것은 연결로 삽니다. 우리 믿는 사람, 택한 사람들은 이제 죽은 것이 자꾸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지나면 그만큼 속에 기능은 살아나고 껍데기는 자꾸 이렇게 주글주글 늙어집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자꾸 주글주글 썩어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자라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의 기능은 지금 자꾸 살아나고, 우리의 몸은 자꾸 부패했다가 이 몸은 예수님의 대속을 지금 입음으로써 사는 게 아니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 가지고 다시 이 몸을 부활시킵니다. 그때 택한 자면 부활 다 합니다. 그 부활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다 사망의 부활입니다. 빌3:10에 바울이 말하기를 '부활의 능력에 참예하기 위해서 주의 그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하든지 그의 고난에 참예하기를 원한다', 그 말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이제 죽어야 산다는 말입니다. 죽어야 산다 말은 변질이 되어야 살고, 변색이 돼야 살고, 이제 그 힘이 변해서 산다는 말입니다.
그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그 힘이 죽는 힘입니다. 죽는 힘인데 이제 사는 힘으로 바뀌는데 그 연결 되어서 살아나는 것은 처음에는 문서 계시로 살아납니다. 문서 계시와 연결이 되면, 살아났지만 불완전한 그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 다음에 그 영감과 연결이 되고 문서와 연결되면 그 안에 내나 그 문서 안에는 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하나님의 그 영감이 내나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감과 연결되고 고 다음에는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 요6:48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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