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완성해 놓은 사활의 완전 대속이 복음에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복음 속에 하나님의 사활의 완전 대속의 완성인 이 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래 우리가 복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복음이라 말은 복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곧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이 신구약성경 계약 안에 담겨 있다, 이 계약을 복음이라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신구약 성경을 어떻게 깨달아야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신구약 성경을 깨닫는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 말합니다. 교리라 말은 예수교에 대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 말입니다. 교리라 말은 깨달음이라 말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깨달음이라. 또 달리 말하면, 성경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받은 구원을 보수하는 그 모든 지혜가 담겨 있고 또 원수를 바로 지적해서 방어하는 그런 모든 지혜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바로 깨닫는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깨달은 이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믿는 걸 가리켜서 신조라 그렇게 말합니다. 교리라 신조라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담겨 있는 이 사활의 대속, 우리 구원 곧 복음, 우리 구원을 깨닫는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고 말하고 깨달은 대로 그대로 자기가 믿는 그런 것들을 가리켜, 믿는 조건 ‘나는 요거는 요래 믿는다 조래 믿는다’ 하는 그런 것을 신조라 그렇게 말합니다.
(89052653/2760)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라는 것은 어떤 것이 의냐?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우리에게 행하라고 할 때에는 명령이라 이렇게 말했고 또 그 뜻을 이루어 놓은 것은 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롬1:17에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준행한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홍수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으므로' '다 준행하였더라'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출39:43 끝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성막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그들이 다 그대로 검사할 때에 되었더라. 그런고로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하는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크게 항상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노아 때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데에 만일 준행하지 아니한 그 부분이 있었으면 그 부분이 홍수를 방어해 낼 수 있었을까? 그게 있었으면 전부가 다 헛일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것도 생각해 보고, 또 약2:10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되 하나를 범하면 모든 것이 범함이 된다' 하는 이런 말씀, 이것이 진리는 진리입니다. 진리기 때문에 이 진리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준비를 할까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벧후3:10에 보면은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고 이렇게 다 풀어지고 이래 될 터인데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타서 다 풀어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면서 거기 한 마디 해 놓은 것이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이 말씀이 문제가 됩니다. '의의 거하는 바'
그러면 거기는 무엇이 거하고 있는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어떤 것이 가서 살고 있고 거기 가서 있을 것인가? 의가 거기 있다.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면 의라는 것은 어떤 것이 의냐?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우리에게 행하라고 할 때에는 명령이라 이렇게 말했고 또 그 뜻을 이루어 놓은 것은 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롬1:17에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준행한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어떻게 그 성구들을 우리가 해석을 해야 모든 성경에 걸리지 않게 바로 해석을 해서 가질 수 있는가? 거기 '우리는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약속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고 또 어떤 모든 사망이나 죄나 이런 환난이 와도 해를 받지 않는 그런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입니다.
* 창6:22 :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출39:43 :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 약2:10 :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 벧후3:10 :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88121650)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그 말은 실낱같은 믿음 가지고 나중에는 손가락 같은 믿음에 나아가게 되고, 손가락 같은 믿음이 뒤에 가서 팔뚝 같은 믿음에 나아가고, 팔뚝 같은 믿음이 나중에는 한 아름 되는 믿음이 되어지고, 한 아름 되는 믿음이 나중에는 이 세상에 가득 찬 믿음이 되어집니다. 세상에 가뜩 찬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 앞에는 세상이 없습니다. 세상이 다 없어져 버립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는 말입니다. 의가 뭐인가? 예수님의 사활로 이루신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은 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이 전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사 중에 제일 의로운 것이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 의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 의로운 이것을 가리켜서 정금 등대라 이랬습니다, 정금 등대.
정금 등대라는 것은, 등대도 밝은데 정금으로 만든 등대이기 때문에 거기는 흠점이 없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믿음덩어리가 교회입니다. 믿음으로 된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전한 것입니다.
* 대하4:20 : 내소 앞에서 규례대로 불을 켤 정금 등대와 그 등잔이며
* 출5:31 / 출31:8 / 출37:17 / 출39:37 / 왕상7:49
(87011802)
1. 인생은 누구나 자기가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그로 인하여 존속하고,그만을 위하여, 그로 인하여서만 영육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 생명이요 진리인데 첫째 아담으로 인하여 이 위치를 떠나 스스로 있는 자처럼, 또 자기를 위해서 있는 자처럼, 제 뜻대로살 수 있는 자처럼 생각하여 배반하는 것이 원죄요 본죄입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과 만물은사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2. 믿음 곧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의 인도를 따라 언행심사와 지식과 소원과 경영과 방편을 가진 것만이 영생하는 완전이요 이외에 어떤 움직임이든지 이것에 배치되는 움직임은 다 사망의 움직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들의 할 일은 하나뿐이니 곧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믿음 하나만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또 믿음으로 인하여 맺어진 결과가 아닌 것도 섞임 없이 다 사망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맺은 결과는 일시 보기에 어떠하든지 결과가 영생과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믿음뿐이요 우리의 소망은 믿음의 결과뿐입니다.
3. 이 믿음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이루는 방편은 작은 믿음으로 점점 완전한 믿음에 성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은 자기가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아는 것만을 실행하면 또 그 다음에 더 크고 어려운 행함에 힘도 주시고 또 행할 것을 더구비하여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과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굳게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790610)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그런데 이렇게 능력있는 이 복음을 무엇을 가지고 자기의 복음을 삼을 것이며 이 복음을 무엇을 가지고 써먹겠느냐? 아무리 좋은 복음이지만은 이 복음이 내 것이 아니면은 나는 이 복음에게 절단만 나지,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파괴만 당하지 내게는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복음 외의 것은 전부 전멸인데, 복음 밖에는 전부 전멸인데 이 복음을 내 것을 삼지 못하면 무슨 소용있나? 이 복음은 내 것을 삼을라면 믿음으로만 내 것 삼을 수 있다. 이 복음은 믿음으로 삼을 수 있다.
내 것을 삼아 놨다 할지라도 이 복음을 써먹지 못하면? 이 복음은 믿음으로써 먹을 수 있다. 그러기에 믿음만 하면 된다. 믿음만 하면 복음을 차지할 수 있고 믿음만 하면 이 복음을 살릴 수가 있다.
그러면 믿음이 대체 뭐이냐? 믿음은 참 보배로구나. 믿음이 뭐이냐? 믿음은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너를 인도하시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반쪼가리 믿음이다.
'이것은 죽음이다' 이 온 천하 사람이 이것은 사는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생명이라 하는데 복음이 죽음이라고 합니까? 내가 너에게 가르치는 것, 너를 인도하는 것을 내가 믿어야 돼. 인정해야 된다. 옳다 인정해야 돼. 네가 먼저 신구약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모든 것을 말해 놓은 이걸 내가 인정하는 것이 이것이 반쪼가리 믿음입니다. 요거 반쪼가리 믿음이다.
그 다음에는 네가 내가 말하는 것을 인정하는 그 인정을 만분의 일을 인정했든지 천분의 일을 인정했든지 인정한 고것을 정말로 그런가 하고 시험적으로 해보든지 어쩌든지, 마음으로 인정한 그것을 실행을 해봐. 실행하면 온전한 믿음이라. 온전한 믿음이냐? 온전한 믿음이 되기 때문에 믿음이 된 고만침은 복음은 벌써 네 것이 됐고 벌써 복음을 네가 사용했기 때문에 좀 있으면 폭발된다. 좀 기다려라. 좀 있으면 폭발이 된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서계시로 말씀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반쪼가리 믿음인데, 문서계시로 인정한 속에는 이 문서계시를 기록하게 한 그 능력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정확무오하게 이 문서계시를 기록하게 한 그 영감이 문서 계시 안에 있어 그에게 필요한대로 얼마든지 정확무오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그 능력이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속에 들어 있는 영감입니다. 복음 속에 들어 있는 영감이니 문서계시로 나타난 이 복음을 네가 인정하면 이 문서 속에 너에게 필요한 것을 이 복음을 기록한 것이 이 복음이 획 하나도 틀림없는 정확무오하게 한 이 성격 성질로 이 복음의 문서계시를 내가 참되다 인정을 하면 요 문서계시를 인정하는 그 속에 무한함을 너에게 정확무오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복음을 기록한 그 영감이 이 복음 속에 들어 있다.
이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한다" 네가 문서계시에 하나님의 가르쳐 주심을 인정하면 이 안에 무한의 정확무오의 영감으로 연속적으로 너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문서계시를 인정할 때에 그 안에 무한의 계속 영감 계시를 너희가 인정하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네가 인정하고 이것을 행할 때에 이것이, 믿음이 다 네가 이것을 문서계시를 행하면 영감계시를 행하면 영감계시를 행할 수 있는 이 행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82030330) / (82042240) 8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그러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은 믿어 봐야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효력이 없는 것이지마는서도 택함을 입은 자에게는, 의인은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에게는 다른 것 아무것도 할 것 없고 믿음으로 살 것, 믿음으로 사는 것, 믿음밖에 할 일이 없다 하는 것을 다 결론 짓는 거와같이 모든 의인은 다 믿음으로 살게 된다. 이거는 그 결과로 필연성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필연적으로 이런 사람 된다. 필연적으로 자꾸 믿음으로 믿음에 자꾸 나아가게 된다. 더 믿고 더 믿고 더 믿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믿음으로 다 산다 말함과 같다. 다 믿음으로 살지 믿음 외에는 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86030420)5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것은 자기가 어데까지의 믿음을 가졌든지 그 믿음이면 다인 줄로 이렇게 여길 것이 아니고 또 그 믿음으로 그 다음 믿음을 또 받아야 되겠고, 그 다음 믿음에 도달해야 되겠고 그 다음 믿음을 또 갖추어 가져야 되기 때문에 이 믿음도 전진적이며 향상적이며 성장적이며 다 취득적인 것으로서 취해서 또 자기 것 삼고 삼아서 이렇게 그런 성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데, 이 구원을 얻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이 믿음은 어데서 이 믿음을 길러갈 수가 있으며 자라갈 수가 있느냐? 믿음이 자란 것만치 구원은 많이 얻고 믿음이 어린 것만치 그 사람에게 구원은 어립니다. 구원이 어리다 말은 그 사람이 적게 만들어 그렇다 말이 아니고 이 구원에서 멀다는 말이요 이 구원을 얻은 것이 극소량의 구원을 얻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런데, 이 구원을 얻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이 믿음은 어데서 이 믿음을 길러갈 수가 있으며 자라갈 수가 있느냐? 믿음이 자란 것만치 구원은 많이 얻고 믿음이 어린 것만치 그 사람에게 구원은 어립니다. 구원이 어리다 말은 그 사람이 적게 만들어 그렇다 말이 아니고 이 구원에서 멀다는 말이요 이 구원을 얻은 것이 극소량의 구원을 얻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믿음인데 이 믿음은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이 자라가게 되느냐? 이 믿음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지혜를 받아 가지고 이 지혜로 믿음이 자라간다 이렇게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성경에게 지혜를 받으면 지혜 받은 것만치 믿음이 점점 자라가게 된다. 믿음이 점점 견고하게 된다. 믿음이 점점 향상하고 전진해 간다 그렇게 했습니다.
* 딤후3:17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
(87011101) 4
'복음'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약속을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서 주신, 주님의 대속 구원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리인 것입니다.
'복음에는'
'복음에는' 하는 말은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의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셨는데 선포해 놓으신 '구원 계약에는' 그 말입니다. 구원 계약.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는 이 ‘의’를 세상 지식대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의는 어떤 게 의인고 하니 하나님을 따라서 되어진 것을 가르쳐서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의에 대한 부연 설명'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 생각에 옳은 것을 가르쳐서 의라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들은 모르고 하는 말이고 의는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그대로 되어진 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해서 이런 사람을 만들어 보시겠다고 하신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졌으면 그것이 의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런 행동을 해라 하시는 그대로의 행동이 되어졌으면 그것은 의로운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해라 하시는 대로 그 일이 이루어졌으면 그 일은 의로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하고저 하시는 그대로 이루어 지는 그것이 신구약 성경에 발표되어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들고저 하시는 대로의 사람, 하나님이 만들고저 하시는 대로의 행위, 하나님이 만들고저 하시는 대로의 일,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나타났다 하는 말입니다.
'의는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구원의 성취'
예수님은 하나님 의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소원대로 되어진 사람이면 의인이요, 되어진 일이라면 의로운 일이요 되어진 행위라면 의로운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이 목적하신 대로 소원하신 대로의 그 소원 성취. 하나님의 소원성취가 의인데 하나님의 소원 성취가 첫째로 도성인신 대속 부활이 하나님의 소원 성취요 하나님의 그 소원 성취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그 구원이 하나님의 소원 성취니 그것이 의인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복음에 그 하나님의 의가 선포됐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는데 그 의 중에 제일 근본은 하나님이 독생자로 하여금 이렇게 대속과 구속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사람들이 자기가 얻어 가지는 그 방편이 뭐이냐? 얻어 가지는 방편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믿음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점점 성장되고 점점 향상되고 진보되고 점점 성취되는 그 방편으로 순서로 이루어진다 하는 걸 가르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적은 믿음이 많은 믿음이 되고 작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되고 그렇게 점점 돼 간다.
'믿음'
그러면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은 원동이라면 거기에 피동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이다. 또 하나님이 원형이라면 거기에 따라서 그 모양대로 되어지는 그 모형 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다 원형이라면 거기에 따라서 사람이, 자체가 거기에 하나님을 닮아 그대로 되고 또 행동이 하나님의 움직임을 따라 거기에 피동되어서 하나님의 행동같이 되어지고, 일들도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따라서 하나님이 하신 그 일과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신적, 인적 요소'
믿음은 피동이라, 믿음은 순종이라, 믿음은 따른다, 쫓는다, 본받는다, 닮아 간다, 배워간다, 따라간다, 그런 것을 다 한 말로 말해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 합니다.
믿음으로 된다 믿음으로 되는 이 믿음은 하나님의 요소와 우리 사람 요소가 둘이 합해가지고 믿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소를 따라서 사람 요소가 가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하나님 혼자 하시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과 둘이 상대해 합작해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은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 둘이 합하여 이루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본구원은 믿음에서 제외'
우리의 기본 구원은 믿음으로 된 것 아닙니다. 우리 기본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원하든지 안 원하든지 우리 주관이라 하는 이것이 하나도 거기에 개입되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 혼자로서 이룬 것이 기본 구원입니다.
'믿음은 건설구원에 해당'
기본 구원을 얻어 가진 우리들이 건설 구원은 얻어 가진 이 기본 구원을 가지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따라서 자신이 노력을 할 때에, 자신의 역사가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하나님은 원동이요 사람 역사는 거기에 따라서 피동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의 사람 원하는 대로의 행위 원하는 대로의 일, 이것이 다 의인이요 의로운 일이요 의로운 행위인데 그것은 다 어떻게 돼서 됐느냐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들이다 그 말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들이다.
(84010101)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회개는 회개로 회개에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 회개함으로 그 마음에 둘 회개하고 이렇지, 제가 회개할 것 거기다 딱 중단시켜 놓으면 그 다음에는 안 열립니다. 열리지는 않습니다. 회개를 해야 그 다음에 회개의 문이 열려지지 회개하지 않고 닫아놨는데 그 다음에 회개의 문을 넘어서 회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8303130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유가 있는 것은 뒤에 혹 시간 있으면 증거할란지 모르나 로마서 1장 16절로 17절에' 보면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유대인에게요 헬라인에게요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게 거뜩거뜩 이래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로마서 3장 10절에는 보면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여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내나 이것도 하나님이 말씀했고 로마서 3장 10절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 3장 10절에 의인 없다 하는 그 소리는 무슨 소리며 여게 또 의인이라는 그 의인있다고 의인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의인으로 하나님이 인정한 것은 뭐인가? 한 성경에 이렇게 모순되다 이래 가지고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이 없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는 인간에게 의인은 하나도 없는 걸 말하심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없이는 의인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86050621/ 86050730 집회) 5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면, 이 의는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이 의를 설정하셨지만 이 설정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설 정하셨기 때문에 그 설정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각자의 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의인은 하나도 없는데 대속하신 이 의로 알미암아 우리는 의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하셔서 '의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86050730 집회) 5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우리 신앙도 말씀하시기를 복음에는 하나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했습니다. 이 믿어 보고, 믿는다는 것은 뭐 간단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따라보니까 ‘되는 것 같다’ 두번째 해 보니까 ‘확실히 된다' 세번째 해 보니까 `이거는 틀림없다’ 이래 가지고 차차차차 예수 믿는 것도 깊어져 가는 것이지 대번에 되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86062902) 5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대로 하면은 이루어지는 이것은 누가 이렇게 이것을 이루어 가질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이 믿어 보니까, 믿어 보니까 거게 꿀이 나옵니다. 믿어 보니까 보배가 나옵니다.
이러니까, 이제 하니님의 말씀은 부자 방망이라. 부자 방망이. 아이들 옛날 이야기 있지 않아요? 방망이로 뚝딱, 밥 나오너라 뚜드랑땅 하니 밥이 나오고, 돈 나오라 뚜드랑땅 하니 돈이 나오고, 권세 나오너라 뚜드랑땅 하니 권세가 나오고 뭐 뭐든지 뚜드리니까 나온다고 그래 그 부자 방망이라고 이렇게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 모양으로 이리 하나님 말씀은 그거라. 그저 이렇게 하라 하는데 그대로 하면은, 그대로만 순종만 하면은 그게 실상이 나오고, 이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과 이 영감은 그것이 실상을 만드는 비결이나 방편이 아니요, 막바로 그게 뭐입니까? 막바로 그게 실상이오. 막바로 그게 실상이라.
(86063010) 5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을 내 지식과 내 능력을 가지고 접선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이 점점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충만케 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지식이 많고 적은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많든지 적든지 자기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향하여 찾아가서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는 그 역사를 하면 시간 문제이지,
그러기 때문에 인간 지식이 적은 사람과 인간 지식 많은 사람이 같이 나서서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찾는다면 그는 시작한 시간은 같았으나 그 성과는 크게 다릅니다. 그러니까 다 같은 시간에 시발해도 인간 지식 인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인간 지식 인간 능력이 극히 작은 사람과 동시에 출발했다고 하면 적고 작은 사람은 따라가지를 못하게 크게 이룹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적든지 많든지 있는 그것을 다해서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을 찾아 그 지식에게 바쳐 그 지식과 화합이 되고 그 능력과 화합이 되어 이것이 당신의 것이 될 때에, 그분의 것이 될 때에 그분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적고 많은 데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적든지 많든지 그것으로써 충족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신 것을 비유해서 두 냥쭝 닷 냥쭝 맡은 그 비유에 두 냥쭝 맡았지만 완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지식이, 인간 능력이 많고 적은 것이 다 바로 써서 바칠 때에는 차이가 있지만, 차이가 있어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보배롭고 큰 것이 작은 것보다 보배롭지만, 이것이 같이 역사할 때는 가치가 그러하지만 정반대로 인간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찾아가는 이 일 외에 엉뚱한 일을 하고, 인간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을 찾아가서 그분에게 바쳐, 이것을 대가로 낸다 말은 이것을 그분에게 바침으로 그분의 것이 내 것이 되는, 이렇게 이 결합이라면 결합이고, 교환이라면 교환이고,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면 찾아가는 것이고, 성경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 다 한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들어서 이것 가지고 되리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그 지식의 종이요 지식을 측량 못 한 사람입니다. 자기 분수에 넘은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분수에 넘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지식을 제가 바로 측량하지 못했고, 바로 평가하지 못했고, 바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지식이 큰 줄 알고 그 지식 가지고 무엇을 할 줄로 아나,
그 지식을 자기가 완전히 파악을 했을 때에, 그 지식에 종이 되지 않고 그 지식을 완전히 자기가 참 지식해서 그 지식에 대한 실존을 실존대로의 자기가 확실히 알아서 그것을 다 통과하고 그것을 능가하고 소유로 가졌다고 할 때에는, 어떻게 많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에 대해서 자기가 확실히 소유하고 그 지식에 지금 종이 돼서 지식이 움직일 때에 얼떨떨해서 뭐인지 모르고 그 지식에게 붙들려서 지식에 종이 되어서 날뛸 때가 아니고 그 지식을 똑똑히 파악해 가지고 해부해서 그 지식을 올바로 확실히 바로 알았다고 하면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찾아가는 데에 쓸 것 외에는 다른 데는 용도가 없다는 것을,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찾아가는 그 용도 외에는 용도가 없고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찾아가는 그 외에 것은 전체가 사망이라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지식을 많은 능력을 사람들이 파악하기에는 연약하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 지식과 능력에 대해서 파악을 바로 하지 못하는고로 일생동안 속아서 이것이 어떤 그 실력이 있으리라 어떤 결과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의문이 되고 아직까지 거기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의 지식 대신으로 하나님의 능력 대신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다가 망하는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못 이용하면 도로 역효과가 난다 하는 그것을 표현해서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이 옳소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8207166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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