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심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심령이 텅 비어 가지고 있으니 갈급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툴툴 털어서 마음을 비워야 하늘나라가 임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그런 것을 다 비워 버리고 천국에 갈급을 가져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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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바리새교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거기 외식은 1. 율법주의에서 머물고 은혜주의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말함입니다. 2. 그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 행동 안에 종교의식만에서 멈추고 인간이 볼 수 없는 그 심령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하시고 또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행동중에도 더욱이 심령에 대하여 중요성을 알아야겠습니다. 심령에 없는 행동은 생명이 없는 시체와 같고 또 심령에 있고 행동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마치 해산되지 않은 아이와 같겠습니다. 물론 불신자들도 몸보다 마음을 중하게 여겨서 마음의 평안을 귀중히 여깁니다. 그보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심령에 예수님이 계실 수 있고 또 성신도 우리의 심령에 계실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은 과연 예수님의 보좌요 우리 인격가운데 가장 중한 높은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령에 예수님을 모시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심령이 정결하면 예수님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정결하여 심령이 환하게 맑으면 그이의 모든 정신과 총명과 모든 성품까지 다 깨끗하여질 수가 있고 환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의 심령이 깨끗지 못하면 모든 지식도 총명도 지식도 성품도 다 더러워지기 때문에 모든 사리판단과 행동이 더러워집니다. 또 우리의 심령이 강건하여지면 우리의 전인격이 강건하여지고, 인격뿐만 아니라 심지어 육체의 지체까지도 강건하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심령이 국가로 말하면 중앙청과 같고 생수로 말하면 원천과 같은 것이니 우리 심령을 중요하게 중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모든 일이 다 심령에서 시작되고 심령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외부에 모든 육체의 흠이나 점이나 불신자 그 행동 이것은 자타가 보기 쉬운 것인 고로 주의해야될 줄로 알고 또 잘못되면 수치인 것도 알아 관심을 가지나 그 속에 심령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이며 또 자기도 거기 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심령에 대해서는 무심히 지나가기가 쉽기 때문에 심령에 대하여 무심하기 쉽습니다. 모든 일과 결정이 심령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심령에 대한 주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우리들은 크게 손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마음에 간사라는 것은 정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정직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진리에 합당치 않는 것 품은 것을 말합니다.
시56:16-17에는 주께서는 제사를 즐거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였으면 내가 드렸을 것입니다. 주는 번제를 기뻐 안하시나이다.
시51:17절. '주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니이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제사와 번제 원치 않는단 말은 심령을 기울이지 않는 그 제사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단 말이요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것 멸시치 않는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아니하니 상한 심령이 아니고 자기에게 죄지어 상처 발견하여 그 범죄함으로 상처받음을 인하여 자기 마음이 아픈 그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은 멸시치 않는단 말은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 아니라 이 마음이야 하나님께서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시지 않으시고 고대하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상한 마음은 심령이 범죄로 더러워지고 어두워진 것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마음 고치려고 힘쓰는 것을 하나님은 즐거워 환영한다는 말입니다.
시51:10에는 다윗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말은 너무 자기의 마음은 더러워서 고쳐가지고는 안되겠고 아주 새것(창조)으로 지어주소서. 자기 마음 쓸모없는 것 생각하여 아주 새로 지어주시고 자기의 중생된 그 영혼을 새롭게 해달라는 간구하는 것입니다.
시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을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내게 주소서. 내 마음 깨끗케 하사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주님이 주시는 이 구원만으로 만족하고 이 구원을 즐거워하여 이 구원 역사에 대하여 즐거워한다고 주의 앞에서 모든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자기의 할 일을 원하고 원하는 그 마음으로 주에게 복종하게 해달라는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마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깨끗하게 될 때에는 자연히 가난한 마음이 되어집니다. 가난이라 하는 것은 자기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보니 주의 것이요 자기는 전부 썩어 부패하여 옳은 것이 하나도 없고 지극히 적은 것 하나 할만한 자격이 없고 또 주에게 얻지 않은 것은 하나도 필요없는 것 느껴 자기에게는 옳은 것 없고 또 지혜, 능력이 하나도 없으니 여기 대하여 가난한 사람이요 또 주에게 얻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오히려 안 좋으니 소유와 영광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누구인 것 안 사람은 천국이 자기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구주요 예수님으로 그 나라 얻는 것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수 있는대로 외식하기 쉬운 외식의 장소와 형편을 떠나서 고요한 장소와 고요한 정신을 자기 마음 살피면서 주 앞에서 그 심령을 날로 깨끗케 하는 사람이 복이 있겠습니다.
심령이 깨끗케 하는 장소와 입장가져 그 심령 정하게 하여서 그 심령 깨끗케 하고 그 심령 깨끗한만치 하나님의 서광이 비취고 그 서광이 비췰 때 자기 심령이 환해지고 자기 심령이 환해지면 모든 사리판단과 모든 처사가 올발라지고 올바른 처사와 올바른 입장에 있을 때에는 거기는 온천하가 반대해도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사람,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라고 명칭하겠습니다. 정한 마음은 성신이 임하여야하고 견고한 인격은 정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밀히 고요히 외식에서 헤치고 들어가 심령을 중하게 여겨 근원으로 살고 모든 외부들의 표현의 정도로 살기 힘써야겠습니다.
* 마5:8 :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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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달리 번역할라고 하면 '마음이 빈 자는,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빈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사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 이 천국은 행위 천국 성화 천국을 말합니다. 마음이 속에 차 있지 안하고 마음이 빈 사람이라야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질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마음에 아무 것도 없이 빈 사람이 복이 있는가? 여기 산상 보훈에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한 중에 첫째 복이 마음 가난한 사람, 마음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안하고 텅 비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있는 이 복을 첫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비어 있기 전에는 건설구원은 이루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런가?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은 간단하게 한 말로 말하면 옛사람이 마음에 들어 있습니다. 옛사람이 들어 있다 말은 악령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 있고, 또 자기 중심으로 살려는 이 악성, 원죄가 사람들 마음 가운데에 들어 있고, 또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제 욕심, 제 마음, 제 소원, 제 성미, 제 기분, 제 뜻, 저 좋아하는 대로 한 그 모든 삐뚤어진 행위가 자기 마음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말로 말하면 사람들 마음에는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 마음 속에 들어서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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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가르칠라고 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러면 천국이 앞으로 자기 것이 될 것이 아니고 천국이 이미 자기 것이 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자기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천국은 여러분들이 그전에 많이 들어서 알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것이 천국인고 하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고 주님이 그 나라에 왕으로 계시고 또 그 나라의 법은 하나님의 뜻인 이 신구약 성경 말씀과 모든 하나님의 뜻, 진리, 진리가 그 나라의 법이 되어 있고 영생하는 나라요 또 모든 죄나 고통이나 배고픈 것이나 아픈 것이나 슬픈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생과 평강과 진리와 사랑으로 충만한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여러분들이 다 많이 들어서 알 줄 압니다.
여게서 제일 중요한 게 뭐인고 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건 천국이 저희 것이다. 세상이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세상이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공산주의가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민주주의가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이 과학 만능이 저희 세계가 되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런데 이 심령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저희 나라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위에부터 해석할 게 아니라 이 성구는 꺼꾸로 밑에서부터 해석을 해서 올라가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천국이 저희 나라이기 때문에, 세상을 자기 나라로 삼는 사람은 그의 소원하는 것도, 소망하는 것도, 가치로 여기는 것도, 노력하는 것도, 모두 건설하는 것도 다 세상이지마는 하늘나라가 저희 나라가 된 사람은 그와 정반대로 자기의 소망이나 욕망이나 계획이나 건설이나 모든 가치를 하늘나라에다 두는 사람 아닙니까? 하늘나라에다 두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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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기독교는 이 세상에 온 천하에 둬도, 세상에 둬도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을 이걸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축소하고 축소해 가지고 육십육 권이라는 조그만한 속에 함축시켜 놨습니다. 함축한 이 속에는 영감이, 영감 의지가 내주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둬서만 둘 게 아니라, 세상에 못 두지요. 이 세상에 우주에 가득 차고도 남지요. 무한한 이 진리를, 이 함축한 영감 진리를 얼마든지 요걸 통해서 그리 들어가서 잡을 수가 있도록 요렇게 해 놓은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이는 달리는 알 수가 없고, 육십육 권을 암만 외워서 ‘나는 다 외웠다, 다 외웠으니까 나는 육십육 권의 성경은 다 안다.’ 네가 다 안다고 하면은 모르는 게 분명하다. ‘나는 다 이제 하나님의 도리를 다 알고 있다. 다 가졌다.’ 가졌다 하는 것 보니까 못 가졌다. 안다 하니까 못 알았다. 그것은 무한함이요 영원함이라. 또 알고 보니까 또 부족하고 부족하고 자꾸 이러니까, 자꾸,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것입니다.
이 천국은 무한을 내가 얻어가기 때문에, 무한을 얻어가니까, 얻고 보니 내가 조금 눈이 밝아지고, 밝아지니까 얻고 보니 못 얻은 거 더 많고, 더 얻고 보니까 못 얻은 거 더 많고, 되고 보니 못 된 거 더 많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보니까 먼 게 더 많고 이것이 천국의 이 비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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