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며 어떻게 들으며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배우고 듣기는 들었는데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만나지 못했는데 듣고 배웠다 하니까, 그 듣고 배운 것은 그 선생님을, 하나님을, 아버지에게 듣고 배웠다는데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하고, 못한 그분에게 들었고 그분에게 배웠다 하는 그 말입니다.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예수님만 보았지, 예? 예수님의 신성만 보았지 예수님의 인성도 못봤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의 신성만 봤지. 신성이 봤는데 곧 그리스도가 봤다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봤는데 예수님의 신성이 봤는데, 신성이 이제 인성을 가지고 오셨지요. 이러니까 여기 보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그러기 때문에 고 위에 또, 보면 또,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세우신 거기서부터 시발된 구원입니다. 그것을 예택이라고 말하는데 목적에서부터 시작된 그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야 됩니다.
여기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이끌지 아니하면 올 자가 없다' 그 말은 하나님의 그 예정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를 예정했기 때문에 오지, 예정하지 안하면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날에 살린다는 것은 예정 구원에서 이 세상 통과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구속의 토막의 시작 시발을 가리켜서 예정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면 예정 구원보다 먼저 되는 건 뭐입니까? 목적 구원인데, 목적 구원에는 그때 우리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다. 존재가 언제서부터 시작됐습니까? 우리 구원이 어디서부터 존재가 시작됐습니까? 예정서부터 시발됐습니다.
그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로 오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예정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그 말은 이 세상 끝에 부활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생명의 부활로 부활 받을 것. 그 부활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이래 왔다 그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구원이 저 하나님의 그 목적하신 거기서 우리가 존재하지는 안 했지마는 목적을 정한 그 목적 있는 거기서부터 우리의 구원이 뿌리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정으로 이제는 예정부터는 내가 예정되었기 때문에, 예정부터는 내 개체가 벌써 예정에 존재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목적 속에 내 존재 개체로 존재한 것은 예정에 존재 됐고, 예정에 존재된 것이 그 다음에 창조로 존재됐습니다.
이래서 아버지에게 듣지 안하면, 듣고 배우지 안한 자, 듣고 배운 자는 뭐이냐? '이끌지 안하면' 예정 구원을 말하고. '듣고 배우지 안한 자는 모른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창조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벌써 내가 창조됐기 때문에, 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창조 될 때 벌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도록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있다는 말입니다. 듣고 배우는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벌써 창조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이렇게 이 말은 인간적으로 이렇게 인간이 생각한다면, 서로 대면하는 이 대면은 이 사람들이 대면한 것이 아니고, 이 대면하신 분은 예수님의 신성뿐이시다. 그리스도만이 그 대면했지 이 인간들은 대면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에서 벌써 그분과의 관련이 있었고, 창조될 때에 벌써 구원 얻을 자로 창조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자로 그 은택을 입고 창조됐다. 그 자가 예수 믿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목적 안에서 예정되고, 목적 안에서 창조된 그자가 이제 목적대로의 속죄함을 입고, 목적대로의 이제 중생을 입고, 이제는 다시 그 중생한 생활을 시발하는 그것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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