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우리 밥이라'
이것은 비유입니다.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 씨로 가지고서 우리에게 비유한 것입니다. 씨를 심었는데 그 보이는 씨가 썩어서 죽어 버려야 됩니다. 죽어서 썩어야 거기서 생명이 나서 자라가게 됩니다. 씨가 하나도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고 가만히 그대로 있어야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자라납니까, 썩지 않고 산 것으로 살아 있어야 자라갈 수가 있습니까?
씨도 여러 종류인데 밀씨는 속에 생명은 보이지 안하고 눈이라고 있습니다. 눈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눈 속에 생명이 들었습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왜 생명이 안 보여?’ 이러지만 생명을 죽인 밀과 생명이 있는 밀을 억만 배 돋보기로 본다해도 생명을 볼 수 없습니다. 전자 현미경이라는 그런 것으로 몇백 배 몇천 배 크게 봐도 생명은 안 보입니다. 이렇게 생명 그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은 볼 수 없는데 생명이 없는 것을 심으면 썩어 버립니다. 삶아 놓은 씨는 생명이 없는데 생명 없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 죽고 썩고, 또 생명 있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 썩고 죽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씨는 뒤에 나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썩을 것을 다 생명이 삼키게 됩니다. 심은 밀씨가 처음에는 썩으면서 단맛이 납니다. 엿질금입니다. 그 단 것을 생명이 자꾸 먹어요. 나중에 한 길이나 자랍니다. 그런데 그 밀을 쏙 뽑아 보면 밑에 그 씨가 달렸어요. 쪼글쪼글하게 쪽 달렸어. 알맹이는 쪽 빨아먹고 그 껍데기만 달려서 남아 있습니다. 고것이 빨아먹고 살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현실서 이 죽을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생명을 가진 중생된 사람은 현실이라는 밭에 행동이라는 씨를 심고 통과하면서 커지게 됩니다. 새사람이 옛사람을 삼키고 이 심신의 기능 모든 육체를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생명이 완전히 삼켜서 자라고 나면 우주와 영계에 가 가지고서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새생명이 자기를 완전히 삼킨 사람은 세상도 삼킵니다. 자기를 완전히 삼킨 자는 세상도 삼켜요. 밀이 자체 안에 있는 분을 완전히 삼키고 나면 이제 그 밖에 있는 땅들의 많은 지기도 다 삼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체를 먹고 자란다음 세상도 먹고 자랍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모든 이런 권세 저런 마찰 저런 환난 이런 거 모든 거 다 온 세상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은 뭐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밥이라.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 고전15:36 :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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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 밥이라'
조금 시간이 일러 그런지 비 때문에 그런지 사람이 많이 적게 왔습니다. 비에도 막히고 추위에도 막히고 좋으면 좋아서 또 막히고 슬프면 슬퍼서 막히고 이거 뭐, 마귀는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이것 가지고 마귀 솜씨대로 이것 내 쓰고 저것 내 쓰면 예수 믿는 사람 일생 동안 예수 믿을 날 하루도 없이 다 솔박 뺏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신앙은 다 죽은 신앙입니다. 못 씁니다.
세상은 우리로 더불어 싸우는 세상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얼마든지 종노릇 하도록 이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주님이 세상을 이겨서 세상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시고 세상을 이렇게 해서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게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세상으로만 보지 말고 세상 이면에 이기신 주님이 세상을 가지시고 우리를 시련하시며 또 우리를 시험해 보시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나 우리의 이용의 것이요, 성경에는 우리의 밥이라 이랬습니다(민14:9).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세상을 우리에게 이렇게 시험 시련 연성의 것으로 주신 주님을 모르고 세상만을 보고 세상이 크다 힘 있다 그렇게 보는 어리석은 소경이 되지 안해야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됩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이 전투의 신앙을 가져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도 선천 고을에서는. 뭐 넷 집 빠지고 다 믿는다는 그 선천 고을에 하나님께서 신사 참배로 가로막으니까 신사 참배를 꿰뚫고 밟고 넘어간 사람이 얼마 되지 안했고 다 거기에 걸려 가지고 다 떨어졌던 것입니다. 비에 걸린 자는 거기에 의례히 걸릴 것이요. 사업에 걸린 자는 의례히 걸릴 것이요 세상 모든 사소한 이런 난제에게 걸리는 사람은 의례히 그때에 생명 내놓으라 할 때에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투쟁에서부터 하나씩 둘씩 이겨 나가면 마지막에 온 세상이 달라들어도 좋다 하고 승리해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은 역항력을 길러 가야 합니다. 역항력. 거슬릴 배에 그것을 능가하는 역항력을 길러 가야 합니다. 다니엘 그런 사람들은 다 역경에 용감한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경을. 그저 언제든지 순경만 생각하고 여기에서 역경이 오면 거기 또 붙어서 그대로 살고 저게서 역경이 오면 그대로 붙어 사는 그런 창기 같은 그런 정조 없는 그런 더러운 신앙을 우리가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전투의 신앙 승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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