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3:24-30
24절로 30절까지에는 가라지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고 진리와 성령으로 건설하고 자라가는 구원의 성도가 있는 동시에 악령이 보내 가지고 세상과 세상으로 자라가고 건설하게 하는 기독교 세상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이런 것들이 함께 섞여 있기를 예수님 재림 때까지 섞여 있는데 겉은 보면 다 예수믿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지마는 실은 종자부터가 다르다. 종자부터가 다르다.
택함을 입지 않은 것을 마귀가 보내는 것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한 것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너는 가라지다’ 할 때에 가라지라 말이 섭섭하고 가라지 되기가 싫고 곡식 종자 되기가 소원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벌써 종자는 좋은 종자가 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 모양으로, 가라지와 곡식이 한테 섞여 있어 서투른 농부는 가라지인지 곡식인지 열매 맺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이러니까 ‘다 같은 교인 같지마는 거게는 하나님의 자녀도 있고 마귀의 자식들도 교회에는 섞여 있다’ 할 때에 분발해서 ‘뭐 마귀의 자식이면 어쩌라고? 나를 보고 한다. 그래 나는 마귀 자식이다.’ 하면서 강퍅하게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그것은 지금까지는 택자로 보지 못합니다. 멸망할 자식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거는 가룟 유다와 같은 그런 자라고 봐야 합니다.
아무리 그 생활이 어떻게 돼도, 가라지와 곡식이 있다는, 구원의 다른 종류가 있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가라지가 아닌가? 내가 가라지가 됐으면 어찌 되겠노?’ 가라지라 소리를 들으니까 듣기가 싫고 가라지가 안 됐으면 싶고 곡식 종자가 되었으면 싶은 그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행위는 나빠도 종자는 택한 종자라는 것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 안에는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저래 믿어도 되는데’ 그런 것 본받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그런 것이 섞여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마 저 사람은 저 가라지인가보다’ 우리가 모르고 정죄해도 안 됩니다. ‘저래 믿어도 되는가?’ 할 때에 ‘야, 행여나 저분이 가라지인지 누가 알겠느냐? 나는 그래 믿어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깨달아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82021953) 8
---------------------------------------------------
<가라지 비유의 핵심 교훈>
1) 곡식과 가라지의 실상
자, 가라지 비유 한번 합시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그 다음에 해석할 때에 좋은 씨를 뿌린 이는 인자라,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밭은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믿는 사람이 천 명이나 만 명이나 억만 명이라도 우리가 다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있는데 세상에 있는 동안의 것을 지금 말해서 이 밭에 있으니까 밭이라는 건 세상에 있는 동안입니다.
“사람과 같으니”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을 먼저 뿌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먼저 뿌렸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밤에 사람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 가지고서 곡식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덧뿌렸다, 뿌린 위에다 뿌렸다 그 말입니다. 뿌린 위에 뿌렸다.
이것을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이렇게 해석을 안 하고 일반인으로 해석한다면은 그러면 일반인으로 가라지는 전부 지옥 갈 사람들이라 이렇게 해석한다면은 그 가라지가 먼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 먼저 있지 우리 중생이 먼저입니까? 우리 중생이 먼저 아니고 안 믿는 첫째 아담 그게 다 옛사람이고 가라지에 속한 것 아닙니까? 이래 성경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했는데 이 뿌린 순서를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뿌리고 난 다음에 그위에 원수가 와 가지고서 덧뿌렸다.
우리 실지로 우리가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모두 다 대속함을 받아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 모든 대속을 받아서 완전히 대속받아 가지고, 완전히 대속받지 안하면은 우리에게는 새생명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자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자시기 때문에 전지자는 미래를 몰라서, 미래를 모르고 현재에 할 때는 ‘미래를 모르니까 미래 일은 미래 처리하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기 전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이 우리 죄를 나기도 전에 것을 다 대신 담당한 것을 우리가 믿는 것인데 그렇지 안하면 그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나고 난 다음에 된다면 안 되지. 하나님의 전지로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새생명을 받을 때에는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이라야 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이라야 이 새생명이 오지 죄 문제도 의의 문제도 해결되지 안하고는 새생명이 올 수가 없고,
그러면 우리가 새생명을 얻을 때에는 그러면 현재 과거 것만 그렇다면은, 과거 것만 그렇고 미래 것 안 되면은 전지자가 다 미래 것을 훤히 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정죄를 안 할 수가 있으며 그 죄를 그냥 두고, 그러면 죄를 두고 했으면은, 죄를 두고 이것은 생명이 왔다 만일 그래 해석한다면은 또 그 죄가 발견되면 그 생명은 죽어야 되는 생명입니다. 이거 좀 어려워, 자기 양심을 쓰면 알 것입니다.
이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정리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중생함을 받아서 새사람 된 것, 새사람 될 때에는 영도 새사람됐고 또 이 심신도 새사람 됐으나마 영은 다시 대속을 벗지 안할 자로 됐지만 이 심신 이것은 대속을 자꾸 벗기 때문에 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덧 뿌렸다, 먼저 중생되고 난 다음에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은 이것은 다시 들어와서 우리를 유혹시킨다. 유혹시키는 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셔서, 유혹을 받아 가지고 대속된 것 그 유혹이 아니라 다 대속 받고 대속 받은 데에 다 포함된 것 말고 새로 유혹 받아 가지고 우리는 둘째 사망의 해, 예수님이 대속을 하지 안한 것,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야 된다” 두 번 못박혀야 되고 그렇지 안하면 대속할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그는 “다시 죄를 범해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하는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포함되지 안한 그 죄가 우리를 사망시키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게 큰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2) 둘로 나눌 수 있는 하나님
또,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는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그러면 이거 불신자로 말하면 불신자 없다고 신자가 신앙 생활 못 하겠습니까? 하늘나라는 불신자가 없으니까 천국입니다. 이 마귀 자식들 이거 멸망할 자식들이 없다고 신자가 죽는 것 아니오. 또 이 세상에도 그러면 세상에 그거 없다고 우리가 뭐 뽑혀서 상할 것 뭐 있겠습니까?
요거는 똑 한 몸뚱이 속에 있고, 크게 넓게 말하면 이 세상에 택불택자가 있고 또 좁게 말하면 한 사람 속에, 한 사람 속에 중생된 사람 외, 그 후에 미혹받아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사람이 침노해 가지고서 다시 원치 안하는 그 일을 하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새로 범죄하는 이것이 있고, 뽑힌다, 다 상한다 하는 이것도 또 문제고,
그러면 또, 그라면 이 불택자로 말하면은 먼저 거두어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서 다 불에 사르고 이제 곡식은 뒤에 거둔다” 이렇게 말했는데 성경 전부는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이 땅위에서 다 심판받아서 올라가든지 무엇이든지 없어지고 나머지기 남은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이 남아 가지고서 칠년 대환난 가운데에 환난을 받는다 하는 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거둠을 받고 그 다음에 남은 포도는 그 다음에 거둔다고 말했습니까? 그리 안 했습니까? 그거 요한계시 몇 장에 있습니까? “포도를 거둬서 포도즙틀에 넣으니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흐르더라” 요한계시 몇 장? 14장 아니요? 14장 아닙니까? 14장 끝절에 있는데 그 먼저, 먼저 곡식은, 곡식은 성도를 가리키는데 거두고 뒤에 포도를 거둔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런데 여기는 그라면 먼저 거뒀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 거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의 추수 때가 개인 추수도 있고 우주 추수도 있는데 개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떠나게 되면은 멸망받을 심신의 기능도 있고 구원얻을 심신의 기능도 있고 이러니까 그것을 하늘나라를 데리고 갈라 하면은 멸망받을 심신의 기능부터 처단을 먼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거 하고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리 못 믿어도 자기가 범죄하던 그것은 그때 다 원통히 여기고 회개를 하고 원통히 여기고 또렷이 하늘나라 갈 사람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못 믿어도. 이제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후회하고. 그 사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 살면 하루의 정력이 그것이, 하루 살면 하루 정력은 그건 소모됩니다.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정력은 다시 못 찾습니다. 없어졌습니다. 없어져 버렸고 또 남아 있는 것은 또 새 날 살 정력 새 정력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제 산 그 정력이 그러면 오늘 남아 있습니까, 어제 산 정력은 어제로서 끝났습니까? 어때요? 남아 있어요 끝이 났어요? 끝이 난 것 이것은 과학적이라. 그 힘은 아니라. 이것은 이 과학이기 때문에 환하게 다 알 수가 있어.
그런데 내가 오늘 하루 살 때에 내 육체의 이 정력이 말이요, 육체의 정력이 내가 오늘 하루 살면서 종일 영어를 공부하는 어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해서 뭐 몇 백 단어를 외우든지 몇 천 단어를 외우든지 외워서 어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했으면, 그러면 공부했으면 정력은 없어졌습니까 안 없어졌습니까? 정력 없어졌소 안 없어졌소? 정력은 없어졌는데 정력이 만들어 놓은 것 뭣 만들었습니까? 정력이 뭣 만들었지? 영어, 영어 만들었지. 그것을 몰라? 정력이 만든 것은 영어 단어 만들지 안했소? 영어 지식 만들었습니다. 정력은 없지만 영어 지식은 있습니다. 그게 기능이라, 그게 기능.
그러니까 그 기능은 두 가지 있는데,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은 “육신으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 인해서 영생을 거둔다” 했으니까 자기가 하루 정력에서 그 정력이 기능을 만드는데, 썩어진 것이라 하는 것은 땅에 속한 것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밖에 것, 영생성 완전성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다 썩을 것이라고 말했고, 영생을 거두는 것은 영생성을 가리켜서 말했는데,
그러면 자기가 하루 종일 거석하면서 예수님의 구속대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자로서 이렇게 살았으면 그날 정력이 그래 살았는데 정력이 뭣 만들었겠소?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입고 구속의 생활, 구속 노릇을 했습니다. 구속 생활을 했습니다. 구속의 생활 했으면 그날 만들기는 정력은 없어져 버렸는데 그 없어진 정력은 뭘 만들었습니까? 뭘 만들었습니까? 뭘 만들었소? 열한 가지 구속을 만들지 안했소?
그러니까 정력은 없어졌지만 내라는 남은 것이,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살아서 보니까 힘은 하나도 없이 지금 골케골케하고 있습니다. 그 죽을라고 지금 골케골케 한 뭐 칠십이나 팔십이 돼 골케골케하고 있는데 힘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국민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한 그 영어 실력은 자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게 기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어떤 과학을 공부했으면 또 과학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그러니까 땅의 것을 위해서 심었기 때문에 썩어진 것을 거둬. 그것을 지금 그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을 때에, 아무리 죽을 그 골케골케 하고 있지만 그 땅에 속한 기능은 자기가 정력으로 다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기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성령으로 구속을 위해서 구속으로 인해서 살았으니까 구속의 그 기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구속의 기능이, 그러면 진리로 살았으니까 진리의 기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정력은 없어졌지만 그 진리는 제 진리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그날 하루 종일 진리로 살아 진리로 살았으니까 정력은 없어졌지만 진리로 산 그 진리는 자기 것이 돼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게 믿어집니까? 그것이 영생의 기능입니다.
이래 일생 동안 살았는데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가 되니까 자, 이거 육체를 위해서 산 땅에 속한 기능이나 또 하늘에 속한 기능이나 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땅에 속한 이 기능이 무엇으로 가지고 됐습니까? 이것이 정력 가지고 됐습니다. 정력이 기능화된 것입니다. 정력보다 이거 고차원의 것이오.
이런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구원시킬라 하니까 이거 하늘나라 데려갈라 하니까 이것은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데려갈 수 없으니까 이것은 제거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거 제거해야 이거 가지고 가지. 그러니 이것을 먼저 제거할 것 아닙니까?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을 제거를 할 때에 이 제거가 되니까 이것이 무엇이냐? 정력이 모아서 그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이, 기술에다가 일생 정력을 기울여서 기술을 만들었는데 한국에서 못 하는 것 기술을 만들어 그 사람은 하루를 청해 올라 하면은 뭐 몇 억이나 줘야 청하지 안 올 수 있는 그런 높은 기술을 만들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그 기능이, 그 기능이 있어 가지고서 그런데 그 기능 그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정력이, 정력이 그것이 승격화돼 가지고, 정력이 승격화돼 가지고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정력은 그 사람이 기술을 그것을 가지고서 이래 있는데, 그러면 그것이 만일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떻게 처분해 버릴란지? 그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자, 어떻게, 세상 기능으로 된 것은 어떻게 처분을 할란지? 하늘나라 기능된 것은 하늘나라 데리고 가지만 그것은 어떻게 처분할란지 그것이 문제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것은 그대로 그것은 갈라서 처분을 해서 그것은, 그것은 그것대로 처분해서 따로 가르고 또 하늘의 기능은 하늘의 기능 따로 가르고 둘로 하나님이 가를라고 하면은, 하나님이 가를라고 하면 못 가르겠습니까?
그 가르면 그 기능이 말이지, 그런 기능이, 그런 기능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있으면 그 기능이 아픈 감을 느끼고 또 불만한 감을 느껴서 그게 그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느낄 만한 그런 감각을 가질 만한 그런 무슨 감각의 실력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 기능인데, 한국에 제일가는 과학자거나 기술자의 기능인데 그 기능이 그때 아무 감각이 없어요?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없애버리면 없지. 없애버리면 또 없을 수 있지. 없애면 없지만 하나님이 공평되게 그대로 해서 그것은 이를 갈며 있으라고서 말했으니까 그것을 하나님이 나눌라면 나눌 수 있지 않겠소? 전능자니까 나눌라면 나눌 수 있지 않겠소?
나누면, 나누는 것을 이것은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그 사람이 작용할 수가 있고 그것은 이 사람이 주격이 하늘나라 가기 때문에 영은 그것 가져가지 못하고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분리해 가지고서 그것은 지옥에 가 가지고서 형벌받도록 그래 할라면은 할 수 있지 못 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데 이것을 왜 부인하는지? 그러니까 돌아가서 연구해서 이것이 확정되지 안하면 여러분들의 건설구원은 헛일입니다. 미안하지만 헛일입니다.
왜? 이게 안 되면 성경에 여러분들 공연히 벌로 껍데기로 해 그렇지, 그거 자, 열 처녀로 말하면은 처녀도 처녀라, 신랑 바라는 것도 다 같이 바랐어, 등도 가졌어, 하루 종일 기다렸어, 밤중까지 기다렸어, 또 신랑으로 맞이할라고 해서 등도 처음에는 불을 켰어. 이러다가, 다른 것은 하나도 없어요. 아무리 조사해 봐야 다른 것은 내가 보니까 없습디다. 기름 준비 하고 안 한 그뿐입니다.
나중에는 그 사람이 기름 준비할 필요성 느껴 가지고서 기름 사러 가지 안했소? 사 가지고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지만 때는 지나갔어. 기름 파는 집에 가 사라 하니까 기름 파는 집으로 가지 안했습니까? 먼저 그 처녀들도 내나 기름 파는 집에서 샀지 다른데서 사지 안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미리 준비하고 준비 안 한 요것만 다르지 딴것이 다르지 안한데 미리 준비 안 한 그것은 지옥 가 버렸고 이건 천국 갔다. 그러면 지옥 가면은 또 성경에 말하기를 “그 공적이 불타면은 해를 보고 공적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으리라. 그 공적이 불타면 구원을 얻으나 저는 불 가운데서 구원 얻는다.” 이건 성구 아닙니까?
3) 성경의 권위를 확고히 믿으라
여러분들, 성경에 백 번 말한다고 권위 있게 보고 한 번 말한다고 권위 없게 보는 것 그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 믿음이 잘못된 사람이오. 성경에는 한 번 말한 것이나 천 번 말한 것이나 꼭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도 거석한 사람이면 한 번 말이나 두 번 말이나 같은 말이지 ‘한 번 말하니까 안 됐다. 한 번밖에 말 안 했는데.’ 그럴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한 번 말해도 제가 책임져야 되고 두 번 말해도 책임지고, 백 번 말했으나 한 번 말했으나 책임은 같지, 다릅니까?
우리 천한 인간들도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그거 한 번 말했으니까 권위가 다르고 여러 번 말하니까 권위가 다르다.’한 번이나 여러 번이나 같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서, 여기 때문에 지금 우리, 왜? 우리 진영에 지금 미혹이 많이 들어와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때문에 지금 분망해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듣기를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에 그래 말한다고서, 그런 놈은 잡아죽어야 된다고서 어떤 노회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을 누가 나한테 편지를 했습디다. 설교록 보고 이라니까 이래 죽이겠다 하는데 이렇다고 그래 말해요.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다가 죽는 것이 순교자요. 진리대로 삶으로서 그 생활에 마찰이 돼 가지고 죽는 것이 순교자요. 그 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또 진리를 깨달아 자꾸 더 깨달아 갈수록이 동지는 적어집니다. 많아지는 것이 아니오. 그거 어떻게 많은 사람이 다 바로 깨닫겠소? 최고로 바로 깨달은 사람은 숫자가 적어지지.
이러니까 이게 그거냐 이거냐 해 가지고서 여러분들 생사를 결정을 해 버리십시오. 이게 만일 내가 말한 것이 틀리면 이거 나를 배반하고 바른 데로 가야 될 것이고 이게 만일 맞다고 하면은 이거 틀렸다 하는 것은 다 배반할 수 있지 않습니까?
(87061030)sh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