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하면 성경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야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대구에서 집회한 후에 어떤 분이 편지를 했는데, 그분이 알고 싶기는 알고 싶은 분인데, 이 설교에 대해서 '배 타고 가는 것은 인간 방편이라고 하셨는데 배를 타고 가면 노를 것은 그거는 필연한 일이 아닙니까?' 배 타고 노 젓은 것은 필연한 일인데 그 노 젓은 것은 인간 방편이라 노를 젓지 안 해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설교를 했는데. 거게 대해서 좀 깨닫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문의가 왔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답을 해 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은 다 갈릴리 바다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해서 주님이 정해 주신 그 목적을 향하여 다 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것이 그때의 형편에 그러 것이 아니고 요 역사적인 그런 사건이 있는 그런 사실이지만 요 역사 적인 요 사실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영원 전부터 그때에 제자들이 배 타고 가게 되고, 바람이 일게 되고, 또 제자들이 무서워하게 되고,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게 되고 하는 것이 요것이 일 시에 돌발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계획하실 때에 영원 전에 요 사실이 안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요 사실을 예정해 놓으시고 그대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그때에 의외에 갑자기 그런 일이 닥켰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바로 깨달아지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안하면 어게 대해서 올바른 깨달음을 또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요 사실은 비유는 아니고 비유보다 고 형식적인 고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니까, 무슨 이적이 나타났든지 또 성경에 어떤 사건이 있든지 이라면 여기서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요 구원 도리를 바로 깨달아서 내가 구원의 그 이치를 써 먹도록, 그 이치에 맞도록, 멸망받는 이치라면 그 이치를 피하도록 요렇게 하지 안하면 그 사람에게 이것이 복음이 되 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가는데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라.' 하는 이 목적을 정해 주심같이 우리들은 '세상을 건너서 세상을 건너서 무궁한 세계에 가라,' 주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무궁한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에 물에 빠지면 죽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도 이 세상에 빠지면 죽습니다. 익사가 됩니다. 빠지면 죽습니다. 물 위로 배로 타고 가든지 어짜든지 물 위에 물을 타고 밟고 가야 되지 물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세상에 떠서,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야 되지 세상을 초월하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살면 멸망받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이런 형식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배 타고 건너 갈 때에 노를 저으면서 건너 갔습니다. 노를 저은 것이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바다에 건너 가면 배타고 노 저어서 건너 가는 그것이 일반 방편이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러 주시는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거쳐서 하늘나라를 갈라고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 일에는 그들이 배 타고 노 젓은 것처럼 우리 세상에 이런 직장 저런 직장, 또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써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배 타고 노 저어 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이런 직장 저런 직장, 이런 현실 저런 현실 뗘러 가지 현실을 타고 또 노를 저으면서, 현실을 타고 우리 마음과 우리의 몸으로써 이 세상 모든 생휠을 하면서, 노를 저으면서 세상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이 갈릴리 바다를 거쳐서 주님이 가라고 목적하신 곳에 가는 것입니다.
가는데, 왜 풍랑이 일었느냐? 처음에 갈 때는 풍랑이 안 일었는데 뒤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물론 풍랑이 이는 것이지만 여게 풍랑은 다르다 그말이오. 여게 풍랑은 우연히 일어난 풍랑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신 대로 풍랑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어나다가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시니까 즉시 바람이 잔잔했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뭐이냐? 우리가 이 세상 여러 가지 현실 이라는 모든 자기의 형편과 사정을 타고 거게서 노를 것은 것처럼 우리는 이런 생활 하고 저런 생활하고, 마음을 쓰고 몸을 써서 이렇게 활동을 해서 생활하는 그 생활을 통해 가지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그 제자들이 이렇게 배 타고 가면서 노를 것고 이래 하다 보니까 그만 노 젓은 데로 자꾸 신경이기 울어져서 '노를 저어야 배는 간다. 또 노를 것지 안하면 이 배는 주님이 명령하신 그 건너편에 갈 수 없다.' 건너편에 간다는 그 모든 주권이, 건너편에 건너 간다는 주권이 노를 것은 데 있다고 노에게만 그만 전권을 맡겨 버리고 그리만 자꾸 옮겨졌던 것입니다.
첫째 자기네들이 가질 것은,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요,만주의 주시요 창 조주시요 주권자시요 대주재시기 때문에 이분이 건너편으로 가라 칭시니 첫 째 이분에게 주권을 맡겨서, 이분이 가라 했기 때문에 누가 못 가게 하며 바람 이 어떻게 못 가게하며 바다가 못 가게 하겠느냐? 이분이 가라고 하셨으니 만일 배가 없으면 우리가 물 위에 뛰어 내려도 건너편에 갈 수는 없다. 그러면, 물 건너편에 가게 되는 것이 주님이 가라고 하신 이명령 하신 주님에게 총 주권을 둬야 되는데 그 주권은 차차 차차 그만 희미해졌다 말이요. 희미해져 가지고 노를 젓은 데 거게만 됐습니다.
또 그들이 둘째로 알아야 될 것은.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라 하셨으니 주님이 말씀해 놓고 안된 일이 하나도 없다. 없는 가운데 천지가 이루어 져라 하니까 이루어졌는데,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이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고 건너편은 가게 된다. 주님이 가라 하시는 그 명령의, 말씀의 능력으로 가게 된다. 둘째로는 이 말씀의 절대성을 저들이 믿어야 될 터인데 그것을 그만 뺏겨 버렸습니다. 그걸 무엇 때문에 그게 희미해지 게 됐느냐? 그거는 희미해지고 노를 저어서 간다는 이 노로 말미암아서만 간다는 이리 자꾸 마음이 기울어지다 보니까 하나님의, 주님의 권능도. 주님의 말씀의 그 절대성의 이루어지는 그 성취성도, 또 자기들의 '우리는 건너편으로 간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간다. 우리는 하늘나라 구원을 이루어 간다. 주님이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고' 이런 것은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명령하셨고, 또 당신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신다.' 하는 요것을 견고히 잡고,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우리가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생활 저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여러 가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해야 우리가 살고 그것을 해야 구원을 이루고 하는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권 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주님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주님의 권능과 명령을 이루시는 데는 우리에게 주신 이 자연의 법칙을 이것을 써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연의 법칙을 쓰지 않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 가 되고, 자연의 법칙에게 정권을 맡기는 그것도 또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가 되고, 그러면, 첫째 주님에게 권위를 두고. 둘째로 말씀에 권위를 두고, 셋째로 목적을 정했으니 이 목적에는 필연적으로 도달한다. 목적에 권위를 두 고, 이 세 가지에 절대 권위를 두고 이 권위가 나타나는 데에는 우리에게 이 자연을 주셨기 때문에 손을 움직여야 되고 발을 움직여야 되고 말을 해야 되고. 일을 해야 되고 하는 것이지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절 대 권위, 명령의 절대 권위, 또 하늘나라로 목적을 정해 주신 목적의 절대 권위 이 세 가지 권위는 이것은 우리에게 이런 직장이 있을 때 이런 직장을 통해서, 저런 사업을 통해서, 또 저런 현실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루어 가도록 하셨 기 때문에 이 자연 법칙이라는 이것을 우리가 사용 하는 것이지. 자연 법칙은 이 세 가지 권위가 나타나기 위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지 이 사용 하는 자연 법칙헤 그것이 되고 안 되는 것이 있지 않다. 권위는. 자연 법칙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 자연 법칭을 사용하는 것이지 자연 법칙을 사용치 아니함으로 안되는 게 아니고 되고 안 되는 것은 그분의 권위에 있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이 세 가지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그 권능이 와 가지고 이걸 해야 되지 그 권능을 잊어 버리고 나니까, 그 세 가지를 잊어 버리고 나니까 노는 열심히 젓고, 저들이 다 어부의 아들이요 어부의, 대대 손손이 어부기 때문에 노 젓은 데에 얼마나 능숙하겠습니까? 노를 것고 이러니까, 바람이 이니 '바람 불 때는 이리 저어야 된다, 저리 저어야 된다' 저거 노 젓은 수단 방법을 다 썼을 것이라 그말이오. 다 썼지만 배는 조금도 항해하지 않습니다. 딱 중단돼 가지고 저희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싸였다.
요렇게 만드는 이것이 뭣 때문이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연 법칙을 이와 같이 주셨지만 자연 법칙 그것에게 되고 안 되고 권위가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명령하신 그분의 권능과 주님이 목적해 주신 이 목적으로 정해 주신 이 목적에 권위가 있는 것이지. 이러니까, 순전히 주님과 말씀과, 주님과 진리에 권위가 있고, 그분이 목적을 정해 줬기 때문에 이래 이루어진다 하는 권위를 거게 둬야 될 터인데 거게 두지 안하고 자기네들이 이 배 부리는 거기다가 자꾸, 부리다 보니까 차차 차차 바람이 불수록 이 바람이 불수록 열심히 저어야 되겠고, 바람이 거슬리니까 또 수단 방법을 자꾸 써야 되겠고 그리 자꾸 기울어지다 보니까 주님의 권능도, 주의 말씀의 절대성도 주님이 정하신 목적에 대한 이 절대성도 이게 그만 희미해진다 말이오. 희미해 지니까 바람이 일어 났습니다. 희미해지니까 바람이 일어나고 배는 못 갑니다. 이라다가 주님이 오시니까 술술 갔다 그거요 그만 가 버렸어 바람 잔잔하고.
이러니까, 성도들이 배 타고 노 젓는 거와같이. 노를 정는 거와같이 이렇게 자기가 뭐 이런 것을 해야 된다는 거기에 주권을 두고. 그만 그거라야 되지, '내가 예수 믿어 구원 얻을라면 돈벌이를 해야 밥을 먹지 이거 안 하면 밥 못 먹는다' 자꾸 밥 먹는 데에, 뭣 하는 데에 거기다가 총 주권을 기울여 가지고 '그것 아니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아 가는 데에는 마찰이 많고, 방해가 많고 지장이 많고, 이 풍랑 때문에 못 가는 것 모양으로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 신앙 생활 하는 것,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관직을 가졌으면서 '이관직 이거 내가 안 하면 죽는다.' 이렇게 생각 하나, 너는 관직을 통해 가지고 그 일을, 신앙 생활 해 가지고 구원 이루지만 다른 사람, 관직 말도 못 들은 사람도 저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루어 갈 수도 있고 어부 노릇 하면서 이루어 갈 수 있다. 이러니까 거게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자연을. 너희에게 자연을 사용하게 하는 그것도 명령이기 때문에 네게 주신 그 자연, 네게 주신 현실을 네가 사용 해서 하라는 것이지, 그 현실 그것에게 뭐, 그것을 네가 함으로 뭐이 된 다는 그게 아니다. 이 권능에 있는 것이니까 다만 네가 어떤 현실을 하면서라도, 우리가 싸울 것은 뭐이 싸울 것이냐? 내가 지금 돈벌이를 하면서 돈벌이를 하니까 내가 밥을 먹고 지내나? 암만 쌀이 여러 수천 석이 내 앞에 있어도 쌀낟기 한 낟기도 못 먹게 하시면 못 먹는다. 또 내가 이것을 함으로써 무슨 가정이 유지돼 가느냐? 하나님께서 이 방편이 아니고 다른 방편으로도 먹여 줄 수 있다. 이러니까, 내가 먹는 것,입는 것 사는 것, 세상을 하늘나라를 향해서 걸어 가는 것, 이 승리 생활을 하는 것,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 의의 생활을 하는 것 구원을 이루는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은 순전히 주님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과 주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신 목적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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