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주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합니다. 믿는다고 우리에게 힘이 있어 하는 것 아닙니다. 믿을 때에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의가 되시고, 거룩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사랑이 되시고, 주님의 가지신 그 속성과 능력과 모든 계획과 경영의 소원이 우리 안에서 내것이 돼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나 우리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무슨 주먹덩이만한 것이든지 그리 아니면 뚜렷이 무슨 모양이나 형체로 오면 '이게 예수님이라' 그러면 잘 믿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런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시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처음에는 사람의 형체 가지고 나타나셨지마는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나타나셨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신성과 인성이 다 완전해졌기 때문에 사람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또 보이게 하려면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하려면 보이지 않게 합니다. 보이게 될 때에는 하시는 일이 절제 있고 지장이 있고 보이지 않게 영으로 그렇게 계실 때는 완전이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나 하는 일을 다 한다' 그 말은, 믿는 자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믿을 때에 주님이 자기 안에 오셔서 자기 중에 자기로 자기 속에 계셔서 자기처럼 역사하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 밖에서 역사하시던 그 모든 일을 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대속하셨기 때문이라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모두 다 대속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대신 하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전에는 예수님께서 신성이 인성을 입고 계셨습니다. 인성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피조물로써 할 수 없는 일은 못 합니다. 피조물로서 할 수 있는 일만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피조물로 할 수 없는 일을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완전히 다 이행하셨습니다. 피조물로 할 수 없는 일까지 다 하셨습니다. 그것을 완수한 것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으로 할 수 없으신 것을 신성과 인성이 일위가 되어서 신성의 능력으로 인해서 인성이 인성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인성을 입고 계실 때에 하신 그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하는 그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으로 인성만으로 할 수 없는 그 큰 일을 다 신성과 인성이 일위가 돼 가지고 하셔서 완료를 했습니다. 완성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하실 때는 아직 완성하기 전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 할 수 있다' 그 말은 인성이 완성을 한 후에 된다 그말입니다. 인성이 완성을 한 후, 신인양성일위인데 피조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하는데,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말은 십자가 못박혀 죽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까지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완성 못 했습니다. 미완성 단계에 있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다 완성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과 못박히셨다가 부활하신 후와는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을 완성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와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와서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는 일은 예수님이 사활의 완성을 이루시기 전 하시는 일보다 후에 우리가 더 큰 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는 아직까지 하지 못한 미완성의 일이 있습니다. 미완성의 일이 있는데 미완성의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것보다 완성 후에는 더 큰 일 한다, ‘미완성의 지금 내가 하는 것보다 완성 후에는 너희들이 지금 나보다 더 큰 일 한다. 그것은 더 큰 일, 완성을 한 내가 너희들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더 큰 일 한다.’ 요것을 잘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저도 한다는 것은 뭘로 하느냐? 제가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살아 계실 때도 하나님이시요 영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믿는 그자 속에서 역사해 가지고 지금 내가 하는 일 그도 다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다 할 수 있는 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그 안에 계셔서 그를 붙들고 하시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활하시기 전과 사활하신 후가 하시는 능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활하시기 전보다 사활하신 후에 더 큰 일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사활하시기 전에 우리 속에 역사하시기를 당신이 역사할 걸 다 역사하시는데 사활하시기 전에 우리 안에 와서 역사하시는 것보다 사활하신 후에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심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87120340)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데, 아버지에게로 간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그 공로의 역사를 완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모든 택한 자들을 대속했으니까 너희 대속해 놓은 자들에게는 얼마든지 전파하면 다 퍼진다, 더 양적으로 더 큰 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틴에 전했지만 이 복음이 온 천하에 가득 찰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85032253) 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것은 한 번만 해도 틀림없는 말씀인데 또 진실이라는 말 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진실을 붙이되 한번 더 “진실로 진실로” 이래 놓으니까 또 거짓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같이 그래 들려집니다.
한번 말씀하면 그대로 다 그대로인데 뭐하려고 진실이라는 말 새삼스럽게 붙일 것이며 또 진실이라는 말을 두번이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붙이셨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당신의 말함이 에누리 있고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더 견고히 믿도록 하기 위해서 “진실로 진실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하는 이 말을 붙이지 안한 말씀이나 진실로를 뭐 두 번 세 번 붙인 말씀이나 꼭 같습니다. 또 주님의 말씀은 백 번 말씀한 것이나 한 번 말씀한 것이나 꼭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들의 부패성을 헤치고 우리로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이 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신데 어떤 예수님 믿는가? 예수님은 혼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또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게 아니고 그속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내주하셔 가지고서 보이는 일들을 하신다. 이 사실을 믿으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볼 수 있게 역사하는 것만 네 눈으로 보고서 하나님께서 뭐 육안으로 보기에 손으로 만지고 어떻게 하고 말이지, 예를 들면 이 손으로 주물든지 안수를 하든지 뭐 어떻게 하든지 이렇게 해야 무엇이 되는 줄로 그렇게 알고 있는 그 모든 보이는 나타난 이 현상 세계라는 감옥 속에 갇혀 가지고서 이런 포대기 속에 싸여 가지고 여게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그런 자가 되지 말고 이런 것들을 완전히 꿰뚫어서 이런 것들에게 제한을 받지 안하고 이런 것들을 완전히 초월해서, 하나님이 보이는 형체 속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안한 무형의 존재로 계시고 보이는 형체 속에도 계시고, 역사하실 때는 보이는 형체의 작용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보이는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일을 하시는 이 사실을 믿으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으라” 뭘 믿으라? 성자와 성부와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게도 역사하시지만볼 수 있게 역사하시는 것보다 볼 수 없게 역사하시는 일이 더 많으십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믿으라”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저도 할 것이요”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바라고 인정하고 기도를 한다든지 이래 할 때에는 너거 눈으로 보기에 아무 흔적도 없고 아무 무슨 작용하는 것도 보이지 아니하나 보이지 않는 주님이 보이지 않는 그 역사로서 보이는 것들을 조성해 낸다 하는 이 사실을 믿으라 말입니다. “믿으면 주님이 하시는 일을 다 제자들 너희들도 다 하리라” 오늘 우리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지금 제자들이 이렇게 주님을 믿으면, 보이는 분과 보이지 않는 분을 믿으면,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일들을 해 내고, 또 보이는 일보다도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더 큰 일 하는 것이고, “이 사실을 믿으라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을 너희들도 다 하리라” 육안으로 보는 것만 자꾸 상대하고 가치로 삼고 실존으로 삼는 자들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이 사실을 믿으라. 육안으로 보이는 이것보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것은 더 확실하고, 더 실상이고, 더 정확하고, 더 큰 이 사실을 너희들이 믿으라.
보이는 형체 가진 것 그것의 실존보다 보이지 않는 그 실존을 더 믿으라. 보이는 그것들의 세력보다 보이지 않는 세력은 더 크다. 보이는 성공보다 보이지 않는 성공은 더 크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성공을 위해서 보이는 것들을 다 투자했다. 인간들이 인식하고, 인간들이 지식하고, 인간들이 평가하는 그 차원 이하의 것만 인간들은 보지마는 그 위에는 무한이 있다. 그 위에 있는 것들을 너희들이 믿으라.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을 너희들도 할 것이고 또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 신인양성일위의 제자들과 동행하실 때, 동행 동거하실 때 그때에 큰 일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볼 수 없는 예수님으로, 죽어서 볼 수 없는 예수님이 된 지 후에 더 큰 일을 합니까, 어떻습니까?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더 큰 일 하시는 것은 제자들과 함께 손잡고 이와같이 있을 때 그때에 더 큰 일 하십니까 이제 그만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승천하시고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안할 그때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큰 일 하십니까? 제자들과 한 자리에서 같이 이래 한 자리 손잡고 한 자리에 얘기하고 있을 때 그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지키심이 더 든든합니까 이제 보이지 않게 부활하셔 가지고서 눈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하시마고 하신 그 주님 지키심이 더 든든합니까? 어떤 게 더 든든합니까? 보이지 않는 주님이 보이지 않게 역사하심이 더 확실하고 더 견고하고 든든한 요 사실을 믿으라 말입니다.
“나보다 큰 일 할 것이라” 큰 일 하는 것은 왜 큰 일 한다 했습니까? 지금은 내가 유한한 몸을 입고 너희들과 같이 있기 때문에 육으로 가지고 너희들에게 해 줄라 하는 것은 뭐 별로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어. 또 내가 육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을 입고 있는 내가 너희들 안에 가서 육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마음으로 들어가 가지고 일할라 하더란대도 부자연스러워서 일을 그렇게 능률 있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아무 제재받을 것 없이 너희들 속에 가서 얼마든지 활동해서 일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보다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육체의 형체를 가지고 같이 계실 때에 보다 무형의 존재로 와서 계실 때에 더 큰 능력으로 역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이라 그말입니다.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간다 말은 죽는다 말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세상 사람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계셨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계셨는데, “감을 인함이라” 어째 갔다고 어째 그래 되는가? 어찌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성의 형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자유 자재가 안 됩니다. 이 보이는 형체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 형체를 통해서 일하지 형체를 통하지 않고는 일하기가 어렵고 또 형체를 통해서 일할라 하니까 자유롭지 안해서 제자들에게 주님이 와서 일을 해도 하기가 힘이 든다 그거요.
풍랑이 일어나서 제자들이 바다에서 고생당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거게 물 위로 걸어올 필요가 없어. 그까지 올 필요가 없어. 그까지 올 필요가 없고 그만 영적으로 일하시면 되는데 그때는 그 제자들을 물에 빠지지 안하도록 건지려고 하면 당신이 오셔야 되고 물 위로 걸어와야 되고 또 소리를 내야 되고 또 이래 어째 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안해.
지금은,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제한받지 안하니까 살았을 때에는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을 때에 그때 ‘주님이 계셨으면 죽지 안했을 터인데 주님이 계시지 안해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때는 예수님께서 저 딴데 가서 계시니까 나사로가 죽는 데 거게 계실 수가 없다 말이오. 저게 있으면 여게 못 있고 여게 있으면 저게 못 계시고 이렇지마는 이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양에도 이 시간 계시고, 서양에도 이 시간 계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같이 계시고 이렇게 하는 것이 자유 자재라.
“아버지께로 감이라” 내가 이 육을 입고 있을 때에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지마는 이제 일단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서 완전 승리를 하고 신령한 몸으로 이 부활을 하고 난 다음에는 자유 자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너희들 속에도 더 크게 역사할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더 크게 역사할 수 있어서 지금은 요 조그만한 갈릴리 지방에서 일하고 있지마는 앞으로는 땅끝까지 이 복음이 다 전파되도록 그렇게 일하실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여게서 우리는 보이는 주님 안에 보이지 않은 아버지가 와서 일하신다는 그것을 우리에게 역력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또 모든 제자들이 보고 듣고 접하는 그 모든 예수님의 행동은 “내 행동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나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하는 것을 역설을 해서 자꾸 믿도록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또, 상호 내주하는 것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아서 너희들이 믿으라. 내가 아버지에게 구하니까 보이지 않는 그분이 와 가지고서 나사로도 살리지 안했느냐? 또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일 때에도 주님이 떡을 놓고 아버지 앞에 축사하시니까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분이 오셔 가지고서 그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고도 남게 하셨다 말입니다.
(87122002) 4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통하여 일하심같이 내가 너희들 안에 있어서 너희들을 통하여 일하는 이 사실을 믿으면, 너희들은 뭐 주먹덩이 같든지 고기덩어리 같든지 무엇이 형체가 있어야 인정을 하는 그 형체라는 그 범위 안에 너는 갇혀 가지고서 형체를 초월하지 못하고 항상, 완전은 무형인데 무형이신 완전의 하나님을 향햐여 나아가지 못하고 항상 너희는 밖으로 기어나와서 유형에서만 머물고 있기 때문에 유형 그거는 다 없어질 것들이다. 유형으로 인해서 무형에 나아가라. 유형을 투자해 가지고서 무형을 마련하라.
무형을 마련해 가지고서 무형 중에도 완전하신 그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서 하나님으로 네 안에 계셔서 너를 주관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것보다 네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네가 영접하라.
너는 거게서 떠나지 못해서, 아무 형체 없이 무형의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완전의 하나님이건마는 이분이 너에게 와도 네 속에 쌀내끼만한 형체라도 있는 그것만치도 네가 인정치 못한다, 너는 유형의 그 테두리 속에서 유형을 초월하지 못하고 유형을 꿰뚫고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걸 말합니다.
네가 이 유형의 감옥 속에 갇히지 아니하고 무형의 존재로 너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사실을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보다 큰 것을 하는 것은 더 위대하고 능하고 범위 넓은 광대한 일을 한다 말이지요.
어떻게 큰 일 하느냐?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대속을 완성했기 때문에 주님께도 자유롭고 또 이것을 우리에게 대속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애를 썼다 말이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 속에 갇혔다는데 유한 속에 갇혔다는 유한은 뭐이 유한입니까? 유한 속에 갇혔다 말은 유한한 인간 속에 갇혔다 그말이오. 인간 속에 갇혀야 우리를 대속하기 때문에 인간 속에 갇혔어. 이러다가 인간 속에 갇힌 그 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유한 속에 갇힐 게 아니라 유한을 벗어나서, 유한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돼 버렸고.
이러니까 유한 속에 이제는 이것을 초월해서 벗어졌으니 마치 밧줄에 매여 있던 그 용사가 밧줄에 매여 가지고 일할 때보다 밧줄에서 다 끌러지니까 그 매였을 때 요량하면 몇 배나 많이 크게 할 수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는 너거 안에서 일을 하지마는, 너거 안에서 일을 하지마는 이제 이 대속하시고 사활하신 후에는 너거 안에 일하되 더 크게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낼 때에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낫우고 할 때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동거 동행해 가지고 그들을 통해서 했습니까, 그들의 육안으로 볼 수 없게 그들과 같이 계시면서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그들을 통해서 역사했습니까?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그들을 통해서 역사했습니다. 주님 안에는 아버지가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는 주님이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주님이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시는데 내주하심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식으로 인정으로, 지식으로 인정으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지식으로 인정으로 영접해서 내가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해 주실 걸 믿고 행하니까 일이 됩니까 안 됩니까? 행하니까 일이 돼.
베드로가 건너편에 서서 있는 주님이 오라 하실 때에 주님이 오라 하시니 주님이 자기 속에서 자기를 붙들고 물 위로 걸어가도록 그렇게 하실 것을 주님이 말씀하시니 말씀을 의지해서 알았고 믿고 푹 걸어가니까 건너갔다 그거요.
그러면 베드로가 물 위에 걸어갈 때는 누구 힘으로 걸어갔어? 누구 힘으로 걸어갔어? 주님의 힘으로 걸어갔어. 주님의 힘으로.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때는 누구 힘으로 걸어왔어? 누구의 힘으로 왔어? 아버지의 힘으로 걸어왔습니다.
(87122110) 4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주님이 하시는 일을 제자들이 다 할 수 있다 그말은 주님은 전능자시요 제자들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주님이 하시는 일을 다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이 주님이 제자들 안에서 제자들이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또 주님에게 기도하면 주님이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내주하셔 가지고서 그 일을 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내가 하는 일을 너희들도 다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하는 게 아니고 제자들이 믿을 때에 제자들 안에 아무 형체 없이 무형으로 내주해 계시는 주님이 제자들을 통해서 이런 일 저런 일 하시기 때문에 제자들도 주님이 하시는 일을 다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
예수님께서 제자들 안에서 무형의 존재로 일하시되 십자가의 이 대속을 완료하기 전과 완료한 후가 다릅니다. 완료한 후는 모든 죄의 문제가 다 해결이 됐고 하나님의 공심판 문제가 다 해결이 됐고 또 아버지와 관계가 다 해결이 됐기 때문에 마귀를 이겼고 세상을 이겼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주님에게 주셨고 주님은 다 받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인함이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내가 지금 가지 안하고 아버지에게로 가지 못하고 지금 아직까지 미완성 중에, 모든 일을 미필한 중에, 마치지 못하고 완성치 못한 중에 있는 지금 나와 내가 모든 일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 나와 다르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8712115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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