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아무리 높아도 당신이 다 낮출라면 낮추시고
'솟은 성들을 그 헐어서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이 의지를, 하나님의 의사를 떠나서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 아무리 높아도 그걸 그렇게 부러워하고 그렇게 여기지 마라
아무리 높아도 그것을 아주 땅에 낮춰 가지고서 아주 하나님 섬기는 곤고한 자 빈곤한 자 그런 사람들 발에 다 밟히도록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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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아, 나는 이래 높은 데 있다' 고 막 이래 쌓지만 하나님이 낮추면 어디로 기어 들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솟은 성들을 그 헐어서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강대국이다.' 소련 이 강대국이다, 미국이 강대국이다 일 본이 강대국이다. 이거 다 높은 성인데 아무리 강해 봤자 당장에 하나님께서 진토 만들라면 진토 만들 수 있는 권리가 그분에게 있으니 그런 거 상대할 것이 없다 그말이오.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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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고다음에, 5절에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공연히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높으면 끌어 내립니까? 높면 끌어 내리는 것이 하나님입니까? 아니요. 높으면 끌어 내리는 것이 하나님 아니요.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높아질라고 구원 버린 사람들이라 그말이오. 여호와로 높아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높아지지 안하고 계약으로 높아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높아지지 안하고 세상으로 높아질라고 하는 사람들, 세상으로 높아질라고 하는 사람들 자기 수단 방법으로 높아질라고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아이 뭐 사죄, 창의, 화친 그거 안 버린다고 거기서 뭐 조화가 나오며 뭐 희특한 무슨 결과가 나을 줄 아느냐? 요렇게 지혜 방법 수단을 써 가지고 요리요리 해야 되지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무시하고 피조물 어떤 것의 무엇으로든지 믿는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내비두고 그것으로서 높아 질라고 하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여게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 불택자들 그 사람들은 뭐 죄를 지어도 자꾸 그래 실컨 살다가 지옥갈 것인데, 말하는 거 아니라 불택자 말하는 거 아니요 택자들을 향해서 여호와의 구원을 무시하고 다른 것으로 높아질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이제 자기가 정권을 잡았다, 자기가 회사를 경영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나 한다, 자기 개인이 아니라 자기 집도 성이 되겠고 회사도 성이 되겠고 자기 사무실도 성이 되겠고 자기 지위도 성 이 되겠고 정권도 성이 되겠고 모든 거 되겠습니다. 이래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님 가지고 진리 가지고는 안 된다,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걸 가지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누가 봐도 봐라 주여 주여 해 가지고 되나? 주여 주여 해 가지고는 안 된다. 저 사람은 '주여 주여 하는 거 집어 던져 버리고 이래 했기 때문에 높아지나 봐라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은 저래 낮아졌고, 이제 그 기회를 따라서 형편을 따라서 이렇게 해 가지고 저렇게 높아진 사람 봐라' 그렇게 하나 높으다 한 그것을 하나 넘께서 그것을 땅에 떨어트리되 진토에 떨어지기까지 바싹 깨서 떨어트리고, 저 무저갱 같은 깊은 함정 속에 들었던 것을 높이 들어서 불 속에 들었 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높이던 것같이, 사자 구덩이 속에 들어 갔던 다니엘을 높이든 거와같이 정말로 하나님 계시네, 정말 하나님 계시네 이래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의 물이 넘침 같이 넘치도록 하려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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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이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신다는 것은. 그러면, 기독교는 뭐이든지 높은 것을 낮춥니까? 아닙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세상에서 악을 자기 일 삼고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얼마든지 높아지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이나 우리가 미혹받기 쉽습니다. 여기 꽃마을에 기도원에는 그 안에 내원정사라 하는 절이 있는데, 아주 그 절을 잘해 놨고 부자 절입니다. 또 아주 지식층들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 있으면 어느 날이든지 자가용이 여러 수십 대, 매일 수십 대는 들어갑니다. 어떨 때는 뭐 자가용이 늘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도로 수축도 잘해 놓고 이랬는데 그 사람들은 다 자가용 탑니다.
지금도, 현재 현정권에서도 아마 기독교인들이 많기는 많지만 모두 불교에 나가는, 할머니가 불교에 독신이라 이런 사람들이 장관, 대학 교수, 총장 뭐 이런, 모두 다 그 사람들이 다 불교에다가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 이런 사람들이 다 모두 이렇게 잘되고 이라니까. 이 기독교는 봐도 그렇게 뭐 잘된 것이 그렇게 많이 보여지지 안하고 이라니까 사람들이 의심을 가져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73편을 제가 서부교회서는 몇 번을 아마 그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많이 있는데, 이종교 믿는 사람들, 무신론 소련이 지금 세계의 제일 강대국이 됐고 이북이 지금 이남을 이거 뭐 앞에 있는 맛있는 음식처럼 널큼 집어 삼킬라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다 끌어 내린다는 그 말이 아니고, 물론 그것도 때가 되면 끌어 내리지만 여게 끌어 내리는 것은 일차적으로 여호와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지 아니하고 자기와 세상을 가지고 높아지려 하는 그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구코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그 진리와 꼭 같습니다. 그거 와 꼭 같소.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주시는 이 세 가지 구원을 보수할라는 이것만 할라고 하면, 올라갈라고 그것 하는 것은 또 거짓부리요. 올라갈라고 그것 하는 것은 거짓부리고, 우리는 그걸 지키다가 죽는 것이 우리의 법리입니다. 당신이 죽으심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의 관계에서 우리는 죽든지 불리해도 그것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 구원만을 보수하는 이 자를 하나님께서 이제 높였지 높아 지기 위해서 구원 보수를 한 사람이라면 속에 딴 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놈이 옛사람이요, 기묘하게 가장을 해 가지고 들어 있는 그놈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바라지 안하고 다만 주님이 죽으심으로 이렇게 해 주셨으니 죽기까지 죄를 내가 대적하지 안했다.
우리는 죽기까지 대적해야 되고 또 죽기까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것을 보수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이제는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안하고 그분을 제일로 보는 유일신으로서 우리가 우리 마음 보좌 위에 모셔 놓고 그분이 모든 걸 통치하고 거게 복종하도록 이렇게 하는 그것이, 구속의 은혜를 인해서, 종됨을 인해서, 거게 팔림을 인해서, 그분의 사랑을 인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것을 높이기는 당신이 높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건지리라 나를 아는 자는 내가 높이리라' 하는, 그러기에, 꼭 성경은 보면 이리 저리 말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꾸 한 가지로 말하면 안 되니까 요리를 여러 가지를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성경에 말해 놨고 설교를 하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실은 하나뿐이오. 이러니까, 이리 들어가나 저리 들어가나 들어가 가지고 마지막에는 종착은 하나라 하는 여기에 도달하지 안했으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중간에서 유리 방황하고 있는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높은 데 거하는 자”
라 그 말은 먼저 구속을 받은 자로서 이 외에 자기를 높이는 방법을 삼는 사람들, 또 이 외에 솟은 사람들 자기가 좋은 자리 차지하고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자신이 높아지고
“솟은 성”
그거는 자신을 말하고,
“높은 데”>
높은 곳이라 하는 것은 그 처소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사는 위치를 높이게 하는 방법과 또 자신을 높이게 하는 그 방법을, 그것을,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신 이 구원 보수만 할라고 했는데 이래 높아진 그것은 하나님이 높이 서기 때문에 하나님이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는 것은 구원으로 성곽을 삼았기 때문에 구원으로만 높이지 딴걸로 높이지 안하는데 그 외에 인본으로, 또 그 외에 자기의 꾀로, 수단으로, 방법으로, 하나님이 요걸 제일 원하시느냐 하는 그걸 가지고 해야 됩니다.
한 자리에서 둘이 매를 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두 사람이 불교에 가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두 사람이 설교 하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수 있습니다. 왜? 한 사람은 불교에 설교하는 그것이 자기를 불교에서도 '위대하다 유명하다' 이렇게 인정받기 위해서, 자기 높이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여기서도 내가 하나님의 도를 전해 가지고 하나님의 도가 여게도 들어가야 되겠고 여게 있는 사람도 구원해야 되겠다는, 그 목적과 동기가 다르다 그말이오. 방편은 같지만. 이러니까, 동기와 목적에서 결정을 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과도 중하지만 동기를 제일 중하게 보고 그 다음에는 목적을 중하게 보는 것이지 방편 그거는, 이라고 저라는 그거는 그렇게 중하게 보지 않습니다. 방편도 좋아야 되지만 동기가 좋아서 연약해서 안 될 때는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으로 높아진 그 외에 높아진 것을 다 이렇게 진멸한다, 일차적으로 교회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고, 그 다음은 불택자에게 이렇게 이 세상으로 높아진 것을 하나님께서 '봐라, 너지 봐라. 이 나로 말미암아 높아지지 아니하고 다른 것으로 높아진 것을 봐라.' 이렇게 다 보이는 것이 영원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믿는 사람이 돼 가지고 여호와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는, 구원으로 승리삼고 구원으로 안보삼고, 구원으로 춰득을 삼는 이것, 그러면, 높아질라는 게 아니라, 그거는 안 바라고 '아 이래야 하나님의 안보를 받는다.
이래야 하나님의 승리를 받는다. 이래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는다. 온 세상이 나에게 안보해 줘도. 그 안보는 싫다. 죽었으면 죽었지 안보 싫다. 하나님의 안보만 원한다. 또 하나님이 승리케 해 허야 되지 뭐 세상이 주는 승리 그런 거는 싫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그 선물만이, 사랑하는 당신이 나에게 주시는 선물만이 나에게 필요 하지 다른 간부들이 주는 것은 싫다. 요래서 간부라 본부라 또 요렇게 말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각도로 말씀하고 저 각도로 말씀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 이와 같이 하십니다.
과거에 왜정 말년에 어호와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그 사람들 높인 것이 손양원 목사님이 있을 곳이 없어서 애양원으로 밀려 갔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이 다른 교회에서 모두다 밀어내고 뭐 수단 방법으로 그라는데, 다른 데 가면 마찰이 맙고, 쓸 데 없는 죄악의 마찰이 많기 때문에, 그때 여수 애양원 교회라는 게 그렇게 크지를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리 가 가지고 거기서, 애양원 교회에서 목사 노릇 했는데, 뭐 왜정 말년 신사참배가 나기 전에야 손양원 목사님을 누가 알아 줬습니까? 그 손양원 목사님을 찌끄러기로 알았습니다. '문둥이 목사 문둥 이 목사, 아무도 가치로 안 알아 줬습니다. 이러나, 왜정 말년에 여기서 신사참배로 말미암아 그분이 높아졌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해방 후에는 다른 부흥사가 없어. 다 신사참배한 사람들이 뭐라고 나서 가지고 부흥사를 할 것입니까? 그러니 인도를 다른 사람이 하지 안했소. 그때는 신사참배 안 한 사람들만 다니면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를 하다가 그 뒤에는 부흥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아, 나는 신사참배' 먼저 갑니다. 강사로 가 가지고 '나는 신사참배한 죄인입니다. 나는 신사참배했기 때문에, 내가 이 신사참배하는 구덩이에 빠져서 죽을 욕을 봤기 때문에 내가 말뚝을 박습니다. 신사참배하면 죽는다. 내가 빠져서 욕을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빠지지 말라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편으로 다 상회 했습니다. 박OO목사님도 당신 입으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손양원 목사님 그런 이 외에는 다른 사람 뭐 집회할 사람이 없어.
'신사참배한 나는 죄인입니다.' 그 간증하는 그 외에는 할 게 없어. 그때 한명동 목사님이 거창읍에 교회에서 집회하실 때에도 신사참배한 것을 '나는 그게 원통해서 하루 한 끼씩 안 먹고, 하루 한 끼씩 먹고' 그때 그분이 이래 있은 지가 오래 됐어요. 오래 동안 '지금까지 하루 한끼씩 먹습니다. 나는 그 죄가 원통해서 그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서 하루 한 끼씩만 먹고 두 끼씩은 굶습니다.' 그 한명동 목사님 입으로 말하는 걸 내가 들었습니다. 집회 와 가지고. 그때 그것을 원통히 그래 가지고 회개하는 간증으로 했지 뭐 다른 큰소리 할 수 없었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때 신사참배 이긴 사람들은 큰소리를 해. '신사참배 이럴 때에 생명을 애끼고 주를 버리는 이런 죄를 회개해야 된다' 이렇게 말한다 말이오. '그런 걸 회개해야 한다.' 승리한 자와, 회개한 것과 외치는 것과 달랐어.
그러기 때문에, 그분들, 주남선 목사님도 목사님 중에는 조그만한 목사님입니다.
이랬는데, 신사참배로 그렇게 커단해지고 높아졌고 한상동 목사님도 커단해지고 높아졌습니다. 여게 뭐 그때 김OO목사님 그런 분들은 참 대왕이오. 그런데 나도 그만 조그만한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러나 신사참배로 영 바꿔졌다 그거요. 이 세상에서 그런 걸 우리에게 거울로 보입니다. 거울로 보이는데,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보면 참 큰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큰 줄 알았는데 극히 작고, 작은 줄 알았는데 극히 높은 것.
그러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믿는 사람으로서 여호와의 이 구원을 자기가 보수하는 이것이 성곽이 됐고 이것이 높음이 됐고 이것이 존영이 된 그것만 남고 여호와의 구원 외에 딴것으로써 자기를. 수단으로 방법으로 뭘로 높이려 하는 것은 높일라고한 것만치 반드시 내려오고 맙니다. 반드시 내려오고 맙니다. 반드시 천해지고 맙니다. 세상에서 천해지지 안했으면 무궁세계에서 천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천해지는 게 좋습니다. 천해지는 게 좋고, 아예 그런 것은 우리가 엿보지 안하고 돌보지 안하고 바라보지 안해야 되고 여호와의 구원으로 성곽을, 여호와, 전능자, 창조주 주권자가 그렇게 성곽을 삼으니까 그 성곽 속에 들어가서 구원 얻을 일이지 딴걸 가지고 쓸 게 뭐 있습니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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